트럼프, 나토에 방위비 이겼다…미국 기여분 22%→16%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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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인 지난달 28일 아프가니스탄 미군 기지를 방문해 군인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인 지난달 28일 아프가니스탄 미군 기지를 방문해 군인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자 나라 방어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면서 방위비를 압박할 때 그가 떠올리는 곳은 한국과 유럽, 정확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이다. 미국은 한국과 내년도 이후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을 협상 중이고, 트럼프는 취임 이후 줄곧 나토 회원국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

한해 1768억원 부담 줄어들어 #한국과 협상에도 영향 미칠 듯

나토가 트럼프 대통령 압박에 손을 들었다. 트럼프 요청대로 방위비 지출을 늘리고 있으며, 미국의 나토 기여금도 대폭 줄여주기로 했다. 그에 따른 예산 부족분은 미국을 제외한 회원국이 메우기로 했다고 워싱턴포스트와 CNN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토에 대한 트럼프의 승리로,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 한·미 방위비 협상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나토가 방위비를 인상하고 미국의 기여금을 줄여준 선례를 미국 협상팀이 들고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CNN은 미 국방부와 나토 관료를 인용해 나토 회원국들이 나토 예산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줄여주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미국은 나토 예산의 22%를 기여했는데, 2021년부터는 독일과 같은 수준인 16%만 내기로 했다. 기여금 축소로 미국은 매년 약 1억5000만 달러(약 1768억원)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나토 운영 예산은 연간 25억 달러(약 2조9500억원)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를 약속한 방위비 예산과는 별개다. 국방 예산은 올해 1조 달러(약 1181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한 상징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동맹국에 나토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예정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에 더 투자하기로 했고, 그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나토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방위비 지출을 GDP의 2%로  늘리기로 약속했다. 2016년까지 약속을 지킨 나라는 29개 회원국 가운데 4개국에 불과했다. 지지부진하던 약속 이행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크게 늘었다. 올해는 그리스·영국·에스토니아·루마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폴란드를 포함해 9개국으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이 방위비에 더 기여하지 않으면 나토를 탈퇴하겠다며 압박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2024년 말까지 국방 지출 누적 증가액은 4000억 달러(약 472조원)로 예상된다”면서 “지금까지 전례 없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가 아직 동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독일 방위비 지출은 GDP의 1.4%, 프랑스는 1.8% 수준이다. 이탈리아 1.2%, 스페인 0.9%, 네덜란드 1.4%에 그친다. 미국은 GDP의 3.42%를 국방비로 쓰고 있어 동맹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백악관은 방위비 압박이 트럼프의 나토 정상회의 중요 안건임을 숨기지 않았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은 나토 방위비 분담이 더 공정하길 원한다”면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독일과 다른 나라들이 더 내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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