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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또 강제 북송 위기 몰린 탈북자들…정부는 뭐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탈출한 탈북민 10여 명이 지난달 23일 체포돼 28일 중국으로 추방됐다가 29일 베트남에 재진입을 시도하던 중 재차 베트남 공안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10대 어린이 1명과 20대 청년 2명, 20~50대 여성 7명으로 알려진 이들은 추방 직후 베트남·중국 국경에서 밤을 새운 뒤 29일 아침 베트남으로 다시 들어오려다 공안에 다시금 붙잡혔다. 베트남 공안은 이번에는 탈북민들을 단순히 추방하지 않고 중국 공안에 넘기려 했으나 탈북민 수명이 놀라 기절한 탓에 송환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재차 중국에 추방되면 강제 북송돼 잔인한 처우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외교부 측은 “사건 초기부터 상황을 인지하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탈북민들이 23일 베트남 공안에 체포된 직후부터 베트남 주재 우리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닷새 동안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국으로 추방되는 걸 막지 못했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베트남 총리가 참석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리는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라 협조를 끌어낼 여지가 상당했음에도 추방을 막지 못했으니 더욱 유감이다. “우리 대사관은 ‘언론에 알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반복하며 찾아오지도,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는 현지 북한 인권단체의 주장도 흘려듣기 어렵다.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들어 목숨을 걸고 탈출한 북한 주민들이 강제 추방이나 북송되는 사태가 빈번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탈북민 3명이 베트남에서 체포돼 중국으로 추방된 데 이어 6월엔 삼척항에 도착한 북 어민 4명 중 2명이 서둘러 북한에 넘겨졌다. 정부는 두 사람을 몇 시간 조사한 끝에 ‘귀순 의사 없음’이라 판정하고 즉각 북송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지난달 7일엔 동해로 넘어온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정부는 사법 주권마저 포기한 채 강제 북송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낸 직후였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은 북한 영토 내에 있어도 우리 국민이다. 따라서 탈북민이 북한을 탈출한 순간부터 정부는 전력을 기울여 이들을 보호하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울 책임이 막중하다. 혹여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이런 책임을 의도적으로 방기했다면 정말 심각한 사태다. 외교부 장관의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