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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인식을 치르면 이름 대신 불러주는 ‘이것’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62)

우리나라 최초 한문소설『금오신화』를 쓴 문인 김시습. [중앙포토]

우리나라 최초 한문소설『금오신화』를 쓴 문인 김시습. [중앙포토]

김시습(金時習)과 열경(悅卿). 김시습(1435∼1493)은 이름이며 열경은 그의 자(字)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쓰고 숱한 기행을 남긴 문인이다. 호(號)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 등이다.

대구의 한문 공부단체 문우관의 김홍영 교수는 최근 도산우리예절원에서 점차 사라지는 자(字)의 문화를 소개했다. 자는 태어나면 짓는 이름과 달리 20세 성년이 될 때 새로 붙여진다. 그래서 자는 전통 성년식인 갓을 쓰는 남자의 관례(冠禮)와 비녀를 꽂는 여자의 계례(笄禮) 행사에서 핵심이 돼 왔다.

관례 때 부모는 덕망 있는 어른에게 행사 주관을 의뢰한다. 행사 주관자는 ‘빈(賓, 손님)’으로 불린다. 빈은 관례에서 갓을 씌우고 새로 지은 자를 처음 공개한다. 그 자의 연유를 적은 ‘자사(字辭)’를 낭독하면서다.
관례를 마치면 그때부터 어른이나 지인은 이름 대신 자를 부른다. 어른으로 대접하는 방식이다.

새 이름인 자는 짓는 원칙이 있었다. 김홍영 교수는 “그 중 하나가 본래 이름과 의미적으로 호응하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호응의 첫 유형은 사서삼경 등 경전에 나오는 좋은 구절의 원용이다. 김시습의 이름 ‘시습(時習)’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열(悅)’ 자를 땄다는 것이다. ‘열’ 뒤에 붙은 ‘경(卿)’은 다른 뜻이 없는 자에 붙이는 접미사라고 한다. 『논어』가 만들어낸 이름과 자의 이상적인 조합이다.

퇴계 이황의 아버지 이식(李埴‧1463∼1502)은 자가 ‘기지(器之)’다. 이름인 ‘식’은 ‘진흙’을 뜻한다. 진흙은 그릇을 만드는 재료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름과 자가 의미 있는 호응을 이룬다는 설명이다. 조선 선조 시기 문장가 이정귀(李庭龜‧1564∼1635)는 자가 ‘성징(聖徵)’이다. 『예기(禮記)』에는 기린과 봉황‧거북‧용은 신령한 동물로 성인(聖人)의 시대에 출현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이름 ‘귀’와 자 ‘성징’이 의미로 이어진다.

계명대는 대구 성서캠퍼스에 한옥 건축물을 재현한 한옥촌을 조성했다. 한옥촌의 가운데 서당이 재현돼 있다. [중앙포토]

계명대는 대구 성서캠퍼스에 한옥 건축물을 재현한 한옥촌을 조성했다. 한옥촌의 가운데 서당이 재현돼 있다. [중앙포토]

이름과 자의 의미 있는 조합은 한옥 건축물 명칭에도 응용되고 있다. 김홍영 교수는 “지금도 한옥을 짓는 사람들이 서당과 같은 중심 건물에 이름을 붙인 뒤 그 출입문은 자(字)에 해당하는 조합을 한다”고 소개했다.

계명대는 대구 성서캠퍼스에 한옥 건축물을 재현한 한옥촌을 조성했다. 한옥촌의 가운데 서당이 재현돼 있다. 그 이름이 흥미롭다. 한옥촌을 조성한 뒤 학교는 건물 이름을 지으면서 건축학과를 거쳐 한문학과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한다. 김홍영 교수도 우연히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그가 제안한 서당의 이름은 ‘경천당(敬天堂)’. 학교 측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다시 출입문 이름이 필요했다. 그는 이번에는 ‘경’과 호응하는 정자(程子)의 말에서 ‘경자(敬者), 주일무적(主一無適)’ 중 ‘주일’을 따 ‘주일문(主一門)’을 제안했다. 결국 ‘경천당’과 ‘주일문’이 채택됐다. 계명대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이름은 기독교 쪽이 봐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님은 하나’라는 좋은 뜻이 된 것이다. 한문의 중의적(重義的)인 매력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영주 선비촌의 가운데 건물 ‘명덕관(明德館)’과 ‘원려문(遠慮門)’은 도무지 그 호응 관계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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