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주치의 측, 4500만원 배상 판결에 "사법부 치욕"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6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남기씨의 사인을 설명하는 서울대 백선하 교수. 박종근 기자

2016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남기씨의 사인을 설명하는 서울대 백선하 교수. 박종근 기자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측이 26일 백씨 유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단에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심재남 부장판사)는 이날 백씨 유족들이 백선하 교수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백 교수가 4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달 내린 화해권고 결정 내용과 같다. 재판부는 당시 고인의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병사’라고 잘못 기재한 책임에 대해 병원과 백 교수가 함께 4500만원을, 백씨의 의료 정보를 경찰에 누설한 책임에 대해 병원이 9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진 뒤 이듬해 9월 25일 숨졌다. 서울대병원 측은 주치의인 백 교수의 의견에 따라 백씨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외부 충격에 따른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병원 측은 2017년 6월에야 백남기씨 사인을 ‘외인사’로 공식 변경했다.

백씨 유족은 이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며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지난달 서울대병원과 백 교수가 배상금을 유족에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냈다. 서울대병원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백 교수가 불복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백 교수에 대해서만 분리해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백 교수의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을 인정했던 화해권고 내용과 동일한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입원 경위나 치료 내용, 사망 경과 등을 살펴보면 백 교수가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행위는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망인이 경찰의 직사살수로 쓰러진 이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했고,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다고 하나 상태가 변하지 않았으므로 ‘외인사’로 기재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다.

백 교수 측은 화해권고에 불복하면서 의학적으로 다투겠다는 취지로 변론을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후 3년이 지났다”며 “오랜 시간 심리해 화해권고를 결정한 상태에서 1심을 재개해 심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의 법률대리인은 “적어도 의학적 증거를 제출할 기회는 줘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다가 재판부가 “선고 기일은 변론 시간이 아니다”라며 판결을 선고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대리인들은 “과학과 의학을 무시하며 마음대로 재판할 권리가 있느냐”,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등 반발했고, 재판부는 대리인들의 퇴장을 명했다.

백 교수 측은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은 수술 도중이나 직후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10개월 이상 생존한 사안으로 사인 판단을 어렵게 하는 여러 요소가 중첩된 경우”라며 “이런 사안에서 백 교수가 선행 사인이 아닌 직접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보고 병사 의견을 낸 것은 누구도 비난하기 어려운 적절한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또 “재판부가 백 교수에 진실을 밝힐 기회를 주지 않은 채 판결을 강행한 것은 의사의 양심을 짓밟은, 재판 형식을 빌린 정치판단일 뿐”이라며 “항소해 법적인 투쟁을 계속하는 동시에 국민을 상대로 백 교수의 의견이 옳았음을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