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4일. 오후 9시 20분. 71만원. XX수사. 서유열(법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석채 전 KT 회장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일식당에서 '2009년'에 만났다는 내역이 담긴 영수증이 등장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 신혁재) 심리로 지난 22일 열린 재판에서 뇌물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선 김 의원은 "2011년에 내가 이 전 회장을 만나 딸의 채용을 청탁했다는 서유열 전 사장의 말이 다 거짓이라는 게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측 중요 증인이었던 서유열 전 KT 사장은 '2011년 여의도의 일식당에서 김 의원과 이 전 회장이 만났고, 당시 김 의원이 이 전 회장에게 딸의 채용을 청탁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증언해 왔다. 반면 김 의원은 '일정 기록에 보면 2011년에는 이 전 회장과 만난 적이 없고, 2009년에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과 이 전 회장이 만난 시점이 2009년인지 2011년인지가 왜 중요할까. 2009년보다는 2011년에 만났어야 김 의원과 이 전 회장이 받는 뇌물 혐의에 더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뇌물 사건이다. 'KT에서 채용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재판으로만 놓고 보면 주요 쟁점이 아니다. 이미 이 전 회장은 부정 채용을 지시한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 의원의 딸이 부정한 방법으로 KT에 입사했다 하더라도 김 의원이 그와 같은 청탁을 한 적이 없고 따로 이 전 회장의 요구를 들어준 것도 없다면 김 의원의 뇌물 혐의 자체는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이 재판의 주요 쟁점은 김 의원과 이 전 회장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 청탁을 하고 무언가를 주고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것이다.
만난 시점, 뇌물의 '대가성' 입증 위해 중요
검찰은 2011년 회동에서 김 의원은 딸의 채용을, 이 전 회장은 국정감사 증인 철회를 서로 주고받았다고 보고 있다. 2011년은 김 의원 딸이 KT 스포츠단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던 때였다. 이후 김 의원 딸은 2012년 KT 공개채용에서 일반적인 전형 단계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최종 합격했다. 또 2011년은 이 전 회장이 나가기 싫어했던 2012년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앞둔 해였다. 서로 주고받을 '무언가'가 있을 시기를 따지자면 2009년보다 2011년이 더 들어맞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대로 김 의원과 이 전 회장 측은 2011년이 아닌 2009년에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에 만나긴 했지만, 그 때는 검찰이 얘기하는 '거래 물품'이 서로 간에 없었다는 취지다. 김 의원의 딸은 취업 준비생이 아니었고, 이 전 회장은 3년 뒤 국정감사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검찰 "2011년에도 만났을 것…"
'2009년 일식당 영수증' 내역은 검찰 입장에서 조금은 불리한 증거다. 특히 최근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이 '2012년 국정감사의 쟁점이 KT가 아니었으며,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 간사도 이 전 회장의 증인 채택에 부정적이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바 있다. 증언으로만 따지면 김 의원이 줬다는 '대가'가 조금 모호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 측은 2011년 카드내역서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며 금융거래정보공개명령 요청을 했다. 또 2011년 김 의원과 이 전 회장이 만난 자리에 동석했다는 서 전 사장을 다시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도 밝혔다. 검찰 측은 "김 의원은 이 전 회장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2009년에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며 "한 번 만난 게 아니라 다수 만난 사실이 보이는 만큼 2011년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총선 의식' 김성태 "빨리 선고해 달라"
이 때문에 김 의원의 1심 선고는 내년 초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원래 결심 공판이 22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추가 증거가 나오고 새로운 증인·증거 신청이 있기 때문에 다음 재판이 12월 중순으로 한 차례 더 미뤄졌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의도적으로 검찰이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빨리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바쁜' 이유는 오는 12월 17일 다음 총선의 국회의원 예비등록이 있기 때문이다. 총선 출마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을까 봐 얼른 선고를 내려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권리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일반인도 재판받을 권리는 똑같이 보장돼야 한다"며 "기일을 잡았는데 이 사건을 위해 다른 기일을 미룬다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는 게 아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