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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 쓰다듬는 교황의 물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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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과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과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하는 날(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태국에 있다. 불교국가 태국에 교황이 방문하는 것은 1981년 바오로 2세(재임 1978∼2005)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일본으로 향한다. 교황의 일본 방문 역시 1984년 바오로 2세 이후 처음이다. 일본에선 먼저 피폭지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도쿄에선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자들도 만날 예정이다.

[영화리뷰] #빔 벤더스 감독 다큐 '프란치스코 교황' #빈곤·재해·분쟁 현장 여정, 촘촘히 담아 #아동 성학대 등 교회 내부 비판도 조명 #행복의 비법 "미소와 유머 잃지마세요"

이 같은 교황의 동선을 산발적으로 접하면, 신자가 아닐 경우 특히나 의미를 꿰기 어렵다. 하지만 2013년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이래 그의 여정은 한결같이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었다는 게 빔 벤더스 감독의 생각이다. 그 질문이란 한마디로 이렇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96분짜리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는 바로 이 질문 앞에 관객을 불러 모은다.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과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과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2013년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 타클로반 수해 현장을 찾아 기도하는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2013년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 타클로반 수해 현장을 찾아 기도하는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영화는 교황 취임 이래 교황청이 찍어둔 무수한 촬영본과 제작진이 2016년 이래 그의 순방을 근접 촬영한 기록, 그리고 교황과의 직접 인터뷰를 교차하며 진행된다. 소비지상주의, 사회정의, 가난, 환경 등에 관해 ‘성자의 지혜’를 갈구하는 제작진의 카메라가 그를 따른다. 때로는 교황의 육성으로 전해지지만 대부분 교황이 가는 발걸음 걸음이 답변이다.

로마 무지개 난민캠프와 리우데자네이루 바르지냐의 빈민가, 나폴리와 람페두사의 난민 수용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의 수해 현장, 중앙아프리카 베냉의 소아 병원….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은 동시대의 가난, 질병, 재해, 전쟁의 상흔을 목도하는 일이다. 세상 곳곳의 상처를 껴안고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가요. 왜 아이들이 고통받는 건가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유대인 학살 추모관 앞에 선 교황은 어두운 얼굴로 이렇게 묵상한다. 그는 스스로 되묻는다. “사람아 네가 누구냐. 누가 타락시켰느냐.…” 인간이 왜 고통받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교황은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가진 인간이 만들어내는 죄악과 타락, 불평등. 그걸 해결하는 몫조차 인간의 자유의지 아니겠느냐는 강변이다. 때문에 그는 뉴욕 유엔본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현장으로, 9‧11 테러 추모 현장으로 향한다. “인간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는 존재지만, 자신의 한계를 초월해서 새 출발을 할 수도 있는 존재다.”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지배와 권력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면 폭력과 무관심, 갈등으로 가는 문이 열립니다.”

영화에선 “이 땅의 각 단계에 맞는 교황을 보내주신다”는 말이 나온다. 전임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인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교황의 속명)의 경우가 더없이 그러하다. 아르헨티나에 이주한 이탈리아 이민 2세인 베르골리오는 예수회 출신으로서 500년 역사상 처음이자 1282년만의 첫 비유럽권,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이다. 800년 전 이탈리아 아시시의 청빈한 수도사의 이름을 딴 교황은 수도사 프란치스코에게 주신 십자가 예수의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내 집을 복구하라.”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 모리아 난민수용소를 방문한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 모리아 난민수용소를 방문한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미국 필라델피아 쿠란-프롬홀드 교도소를 방문한 교황이 재소자의 발을 씻기고 거기에 입 맞추고 있다.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미국 필라델피아 쿠란-프롬홀드 교도소를 방문한 교황이 재소자의 발을 씻기고 거기에 입 맞추고 있다.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허다한 속세의 문제에 답하기는커녕 오히려 탐욕과 부패와 착취에 멍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교황은 부단히 노력하고 싸우고 있다. 때마침 불거진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이슈에 맞서서도 교회 내부의 실질적 개혁을 촉구하며 각자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더 많은 세계가 연결될수록, 더 많은 난제들이 아귀처럼 교황을 향해 달려드는 것만 같다. 교황은 이러한 긴장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 “다름이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 등으로 세계 유수 영화제를 석권한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는 고통과 묵상, 설득의 순간들을 화면에 아름답게 옮겼다. 시간의 흐름, 죽음, 나눔과 연대에 대한 생각들이 어떤 신앙의 강요나 읍소 없이 강물처럼 흐른다. 영화 속 인터뷰 때 교황이 마치 관객을 보고 직접 얘기하는 듯한 시선 처리를 한 것은 인테로트론이라는 카메라 특수 장치에 힘입었다. 마지막에 그가 일러주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두 가지만이라도 기억하자. 돈 안 드는 그 비법은, ‘미소와 유머’다. 전체 관람가.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과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과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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