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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김지영’ 속 공유의 이중생활…다시 보는 사투리 천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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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뭐가 이렇게 많노 엄마? 누가 다 먹어…”
380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 대현(공유)이 명절에 본가에 가서 어머니(김미경)에게 하는 대사다(참고로 김지영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역할 배우는 동명이인 김미경이다). 실제 영화에선 ‘부산 네이티브’라면 알 수 있는 부산 억양이 배어났다. 앞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거나 아내 김지영(정유미)과 대화할 때의 말쑥한 서울 억양은 온데 간데 없다. 이 미묘한 차이를 '사소한 발견'처럼 포착했다면, 당신도 혹시 부산/경상도 출신?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남편 대현을 연기한 공유.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남편 대현을 연기한 공유.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사투리 연기는 나름대로 아껴뒀던 건데 벌써 써도 되나 싶었다. 저도 가족들이나 고향 친구들 만나면 사투리가 툭 나온다. 이런 설정 덕에 다소 평면적인 대현이 자연스럽고 세세하게 보여진 것 같다.”

[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들리십니까 '붓싼 스타일' 그 억양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 공유가 밝힌 ‘사투리 비하인드’다. 원작 소설에서 대현의 본가가 부산으로 설정돼 있긴 했지만 공유 캐스팅은 우연의 일치였다고. 김도영 감독은 기자와 통화에서 “리허설 때 ‘혹시 부산말 연기가 가능하겠느냐’ 물었는데, 본인이 부산 출신이라고 해서 자연스레 진행됐다. 가족들과는 부산말, 사회적으로는 서울말 쓰는 것도 극중 대현과 똑같았다”고 했다. 본가에선 엄마를 설득하고 서울에선 아내의 고충에 공감하는 대현의 ‘이중생활’을 실감나게 표현한 공유의 연기엔 이 같은 ‘사투리 연기’도 한몫했다.

부산·서울의 정서차를 억양에 담아

외국인이 아시아인을 볼 때 한‧중‧일 구분 못하듯, 서울‧수도권 사람들은 지방 억양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반면 취학‧취직‧이주로 옮겨와 ‘무늬만 서울말’을 쓰고 있는 지방인들은 상대 억양에서 귀신같이 ‘고향 말투’를 감지한다. 일각에선 ‘김지영’ 속 공유의 부산말이 어설픈 흉내라고 의심하지만 '부산 네이티브'들은 "부산 출신이 서울 생활 오래해서 약간 변색된 말투"란 데 동의한다. 오히려 이제까지 완벽한 서울말로 부산 출신임을 감춰온 공유의 '연기'가 놀랍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훤칠한 키에 말쑥한 수트 패션, 모닝커피처럼 부드러운 남자 공유의 본명은 (이상하게도 부산스러운) 공지철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남편 대현을 연기한 공유.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남편 대현을 연기한 공유.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기본적으로 사투리라는 장벽이 컸다.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부산말이 외국어더라. 불규칙하다.”

지난해 영화 ‘암수살인’에 출연했던 배우 주지훈의 고백이다.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수감자 강태오(주지훈)와 이를 추적‧입증하려는 형사 김형민(김윤석)의 팽팽한 대결을 다룬 이 영화 배경은 부산이다. 김윤석은 물 만난 고기처럼 ‘네이티브 언어’를 구사했지만 서울 토박이 주지훈은 연기 이외 부산 억양을 익혀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이에 대해 김윤석은 “경상도 사투리가 정말 어려운데 (주지훈이) 범처럼 달려들어 온 몸을 던졌다”면서 “100점을 주겠다”고 칭찬했다.

‘암수살인’의 주지훈 액센트가 그럴듯한 데는 각본과 제작을 맡은 곽경택 감독의 기여가 컸다. 김태균 감독은 “주지훈이 중국어 성조처럼 발음마다 강조 표시를 해가면서 사투리의 기본부터 익혔다”면서 이를 위해 ‘사투리 명장’인 곽 감독에게 SOS를 쳤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부산 출신 영화감독 곽경택은 부산 사투리 대사를 본인이 녹음해서 배우들에게 연습하게 하는 거로 유명하다. 지금도 부산 영화 대표작으로 꼽히는 ‘친구’ 시리즈뿐 아니라 ‘똥개’(2003) ‘사랑’(2007)도 이렇게 나왔다.

곽경택 감독 '부산말투' 직접 녹음해 줘 

영화 암수살인 에서 김윤석과 주지훈. [사진 쇼박스]

영화 암수살인 에서 김윤석과 주지훈. [사진 쇼박스]

영화 속 주지훈의 부산 억양은 신들린 연기만큼이나 감탄스럽지만 ‘100점 만점’까진 아니다. 김윤석이 이를 추켜세운 것은 외국인에게 “한국말 완벽하시네요” 하는 심정 아니었을까. 반전은 김윤석도 고향은 충북 단양이란 사실.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옮겨와 사실상 부산 사람이긴 해도 ‘거북이 달린다’(2009)에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던 데는 충청도 네이티브 가족의 힘이 컸을 게다. 그러나 ‘타짜’(2006)에서 보인 아귀의 전라도 억양, ‘황해’(2010)의 연변 사투리 등은 놀라운 대사 소화력 외엔 설명이 안 된다. 그의 팔색조 사투리 연기만 편집한 유튜브 영상(youtu.be/KjcmqV6V0tY)이 조회수 100만을 넘겼을 정도다.

부산 사투리가 안방에서 꽃핀 드라마로는 ‘응답하라 1997’(2012)이 첫손에 꼽힌다. H.O.T. 토니 안의 열혈 팬인 성시원(정은지)과 그의 소꿉친구인 윤윤제(서인국)를 중심으로 한 이 드라마에선 주인공 역 정은지를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이 실제 부산 출신이다. 서인국은 울산 출신이라 부산 사투리 변환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엄마 역 이일화 역시 경북 영양 출신. 한편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네이티브’급으로 구사했던 성동일은 인천 태생이란 게 알려져 화제를 샀다. 다만 어렸을 때 잠시 전남 화순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 ‘사투리 교습’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산 배경에 부산 사투리 영화가 많아진 것은 ‘느낌적 느낌’만이 아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이후 ‘영화의 도시’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다 1999년 출범한 부산영상위원회는 영화 제작부터 상영에 이르는 주요 업무를 관장‧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에서 로케이션 촬영하는 영화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해운대’(2009) ‘변호인’(2013) ‘국제시장’(2014) 같은 ‘천만 영화’도 여럿이다.

부산 제작지원 늘면서 로케이션 급증  

이와 함께 부산 네이티브 배우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배우가 조진웅. 드라마 ‘추노’(2010) ‘뿌리깊은 나무’(2011) 등 사극에선 ‘한양 말투’를 쓰느라 돋보이지 않았던 그의 ‘붓싼 스타일’이 조폭 소재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1) ‘박수건달’(2012) 등에서 제대로 터졌다. 듬직한 풍채에다 ‘가오’를 중시하는 ‘쌈마이’ 스타일이 ‘부산 아재’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가다. 최근에도 부산 올로케이션 영화 ‘퍼펙트맨’에서 이런 캐릭터를 이어갔다. 이제는 서울이 주무대인 금융범죄스릴러 ‘블랙머니’에서도 거리낌 없이 부산 억양을 발산한다.

지난 10월3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배우 조진웅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3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배우 조진웅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색이 강한 부산 말투는 웬만해선 고치기 어려운 편이고, 특히 부산 남자가 서울말로 갈아타면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연기자는 부산 출신이라고 부산 억양을 고집할 수도 없고 다른 사투리에도 너끈히 도전한다. 최근 인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뿜어내는 배우 강하늘도 원래는 부산 태생. 다만 초등학교를 충북 청주에서 나와 멀티 사투리 구사가 가능하다고 알려진다. MBC 주말드라마 ‘두번은 없다’의 박세완도 부산 출신인데 극중에서 충청도 사투리에 도전해 화제가 됐다.

자, 이제 실전 퀴즈를 풀어보자. 다음 소개하는 지문은, SNS에서 한동안 유명했던 것으로 상당히 과장되긴 했지만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줄임말과 억센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지문에서 어머니에게 혼나는 여자주인공의 구체적인 직업은? 소리 내서 읽어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정답은 여러분이 댓글로 달아주길.

경상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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