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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황교안 단식, 민심 못 얻으면 실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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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역대 야당 대표 중 삭발과 단식 투쟁을 다 한 이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유일하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조차 단식은 했지만, 삭발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황교안의 단식에 국민은 공감 대신 “대체 왜 한대?”는 의문만 쏟아내고 있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엊그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의원의 ‘대표 퇴진’ 압박을 피하기 위한 술수 아니냔 지적까지 나온다.

본인은 절박해도 국민 이해 못해 #불통·비선 벗어나 통합 힘써야만 #단식 힘 실려 ‘패트’ 돌파구 마련

황교안으로선 야속할 것이다. ‘임박한 여당의 공수처 설치·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패스트 트랙·패트)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에 나선 뜻’을 몰라주니 말이다. ‘무기한 단식’이란 초강수의 핵심은 108명 한국당 의원들의 ‘의원직 총사퇴’를 끌어내는 것이다. 제1야당 없이 여당이 패트를 밀어붙이긴 쉽지 않고, 설혹 처리를 강행하면 역풍을 맞게 되리란 계산이 깔려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지면 끝장이나 다름없다. 정권은 바로 식물이 되고, 수뇌들은 퇴임 후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따라서 한국당 의원들이 총사퇴해도 “욕 조금 먹고 말지”라며 패트를 강행 처리해 총선 승률을 높이려 할 공산이 높다. 그럴 경우 한국당은 대표의 단식과 의원들의 사퇴란 초강수를 소진한 마당에 취할 수 있는 카드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황교안이 돌연 단식을 선언한 20일 오전 한국당 의원들은 출입기자들을 붙잡고 “대표가 왜 이러시나”며 묻기 바빴다. 지도부조차 이틀 전에야 황교안의 단식 구상을 듣고 뜯어말렸지만 “설마 지르랴”고 방심했다가 허를 찔렀다. “비선들과만 논의한 끝에 치고 나가는 황교안의 악습이 재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선은 황교안의 총리 시절 민정실장 이태용, 비서실장 심오택 등이 꼽힌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이들 ‘총리실 실세’들은 비주류의 대표실 접근을 막아 황교안의 사고력을 제한하는 폐단을 낳고 있다”고 한탄했다. 당 공식라인도 마찬가지다. 박맹우 사무총장·추경호 사무부총장·김도읍 비서실장·김명연 수석대변인이 죄다 친박계다. 이러니 한국당이 중도층 민심과 동떨어진 ‘별에서 온 그대’가 되는 것이다.

총선을 지휘할 박 사무총장부터 불감증이 심각하다. 한국당 관계자 전언이다. “박 사무총장이 지난 여름 취임 직후 서울의 원외 지역위원장들을 만나 ‘당이 살아나고 있다’고 하길래 위원장들이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 당시는 조국 사태 전이라 당 지지율이 죽을 쑤고 있던 때였다. 그러자 박맹우는 ‘내 지역구(울산) 분위기가 아주 좋다’고 했다. 다들 ‘멘붕’이 됐다. 수도권 민심이 영남과 똑같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사무총장 등 요직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정권과의 전쟁’ 같은 철 지난 구호나 외치니 황교안 대표를 만난 청년들이 한국당을 ‘노땅 정당’이라 욕하는 거다.”

더 심각한 건 황교안이 이런 쓴소리를 참지 못한다는 거다. 다시 한국당 관계자 전언. “최근 원외 위원장 6명이 당의 쇄신을 요구하며 사퇴하자 당 지도부가 모 부대변인에게 주동자 색출을 지시했다가 부대변인이 ‘그러려면 나를 잘라라’고 반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 당 조직 인선 정보가 언론에 보도되자 대표 측근인 공안검사 출신 정점식 의원이 색출에 나서 ‘범인’을 잡았다고 한다. 당 대표가 쓴소리 진원지를 색출하는 ‘공포정치’를 이어가니 쇄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나경원 원내대표는 20일 미국으로 떠났다. 당 대표가 “당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단식에 들어간 날 원내대표는 닷새나 되는 외유길에 오른 것이다. 콩가루 정당의 극치다. 이러니 유승민 의원과의 통합도 잘 돌아갈 턱이 없다. 유승민과 가까운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한국당의 친한 의원들에게 “대체 황 대표는 왜 유승민의 통합 조건인 ‘3대 원칙’엔 확답을 안 하고 통합추진위원회 발족 같은 ‘쇼’만 하느냐”며 따지기 바쁘다. 통합은 물밑에서 양측 대표끼리 담판을 짓고, 최종 합의만 전격 공개해 컨벤션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데 황교안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황교안이 단식투쟁에 나선 충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단식은 밥을 굶는 만큼 민심을 얻어가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황교안은 그 민심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단식을 시작했다. 측근들이 “단식하면 열흘은 가게 될 텐데 버틸 수 있겠느냐”고 말리니까 황교안은 “쓰러질 때까지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쓰러지냐 마느냐는 단식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다. 단식이 성공하려면 진심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야권을 탕평해 민심을 얻어야만 한다. 62년 생애에서 처음 단식에 뛰어든 그가 그 과업을 이뤄낼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