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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수위 넘은 수출부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월중 경상수지가 1억3천 여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한다. 86년2월 1억2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것을 끝으로 흑자로 돌아선 지 3년6개월만에 다시 반전된 것이다. 통관기준 무역수지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국제수지기준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였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수출이 전년동기 비 2·8% 증가에 그친 데 비해 수입은18·5%가 늘어 월별 수입 규모로는 최고기록인 53억 달러에 달했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8월의 경상수지 적자에는 그럴만한 특수사정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8월29일부터 시행된 석유사업기금 징수액의 인상을 앞두고 정유회사들이 원유수입을 앞당겨 평상시보다 2억 달러 어치의 원유를 더 들여왔다는 것이다.
또 수출업체들이 원화 절하에 대한 기대로 수출을 미루는 경향을 보인 것도 한 원인이라 한다. 따라서 이 같은 특수사정이 가시는 9월에는 다시 흑자로 돌아서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8월에 1억3천 여만 달러 정도의 적자를 냈다지만 1월부터 8월까지의 누계로는 27억 달러 정도의 흑자를 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8월의 적자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사태를 심각하게 보는 것도 1억3천 여만 달러라는 숫자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8월의 국제수지 지표가 시사하는 것이 수출둔화· 수입급증이라는 가장 바람직스럽지 못한 대외거래상의 구조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처해 있는 여건은 잘 알다시피 달러뿐 아니라 엔화·마르크화 등에 대한 평가절상으로 경쟁력이 한계에 달해 있는 데다 연 2O%에 달하는 임금상승, 연17∼2O% 수준의 금융부담 등으로 심각한 채산성 압박을 받고 있는 것 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출가격 인상으로 그 같은 부담을 전가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가격 전가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업계의 얘기다. 「한국상품이 물건도 좋지 않은데 값만 비싸게 받으려 한다」 는 비판이 외국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수출이 안 되는 데다 억지로 수출해 보았자 수지를 맞출 수 없으니 수출업체들이 의욕을 잃을 것은 당연하다.
반면 국내의 과소비풍조로 수입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재미를 보고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과거 수출에 전념하던 무역업체들이 최근에는 수입상으로 업종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다.
노사분규를 겪으며 뼈빠지게 고생해서 힘겨운 경쟁을 물리치고 수출을 한다해도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편하게 재미 볼 수 있는 수입을 선호하는 것은 경제논리로만 보면 불가피한 추세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경향과 추세가 정착되는 경우 우리 경제가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는 점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부당국자들은 아직도 내수진작에 의한 성장가능성을 운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특혜이고, 형평배분의 새로운 경제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는 관료조차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화나 형평배분의 문제는 수출이 안되고 경제가 흔들려서는 이룰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수출부진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대책을 차제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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