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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호흡튜브 뽑아 사망한 환자, 경고 안한 병원도 책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호흡용 튜브를 스스로 뽑아 반혼수 상태 있다가 숨진 환자의 유족이 병원 의료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연합뉴스]

호흡용 튜브를 스스로 뽑아 반혼수 상태 있다가 숨진 환자의 유족이 병원 의료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연합뉴스]

뇌출혈로 치료를 받던 중 자신에게 삽입된 호흡용 튜브를 스스로 뽑아 숨진 환자의 유족이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인천지법 민사3단독 김연주 판사는 2017년 숨진 A씨의 유족 2명이 인천 B종합병원 의료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B병원이 A씨 배우자에게 2200여만원을, 아들에게 1400여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4년 8월 B병원에서 뇌출혈 일종인 지주막하출혈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다. 이후 성대 밑을 절개해 ‘기관 튜브’를 삽입하는 호흡 치료도 병행됐다. 이때 병원 의료진은 A씨가 스스로 기관 튜브를 제거하지 못하도록 신체 억제대를 이용해 A씨를 묶어뒀다.

억제대는 전신이나 신체 일부분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리적 장치다. 오래 사용할 경우 골절이나 피부 괴사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의료진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억제대 사용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후 같은 해 9월 19일 의료진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억제대를 제거했다.

사흘 뒤 A씨는 스스로 기관 튜브를 뽑아버렸고 반혼수 상태로 사지가 마비됐다. 이후 A씨는 재활병원과 요양병원 등을 옮겨다니다가 2년7개월만인 2017년 4월 숨졌다.

유족은 A씨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기관 튜브를 제거하려 해 위험한 상태였는데도 일반병실로 옮긴 후 의료진이 억제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억제대 미사용에 따르는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B병원 측에 치료비와 장례비 등 총 1억700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스스로 기관 튜브를 제거해 사고가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B병원 측의 책임은 50%이라고 판단했다. 병원 측이 A씨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뒤 억제대를 하지 않은 것은 필요에 따른 선택이라며 의료진의 과실은 없다고 봤다. 그러나 억제대를 하지 않을 경우 환자가 기관 튜브를 스스로 제거하는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반병실로 옮긴 후 A씨의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억제대 미사용 자체를 주의의무 위반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면서도 “병원 의료진은 A씨를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억제대를 사용하지 않기로 판단했다면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충분한 교육을 해야 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명 의무를 충실히 했다고 보기 어려워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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