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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교수 조국, 검찰서 그가 꺼낸 카드는···'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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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연합뉴스]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검찰에 출두해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자녀 입시 비리와 조국 가족 펀드, 웅동학원 허위소송 관련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서다. 이날 소환은 지난 8월 27일 전방위적 압수수색으로 강제수사가 시작된 이후 79일, 조 전 장관이 지난달 14일 법무부 장관직에서 사퇴한 지 한 달 만에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고형곤)는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조 전 장관을 불러 오후 5시35분쯤까지 변호인 입회하에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캐물었다.

한명숙 전 총리처럼 묵비권 행사 #검찰, 장관 사퇴 뒤 첫 피의자 소환 #조국 “일일이 답변 구차하다 판단” #검찰 기록 본 뒤 재판 대응 전략 #조, 섣부른 해명 스텝 꼬인다 판단 #검찰엔 구속영장 청구 명분 쌓여

조 전 장관은 이날 검찰 조사를 받으며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했다. 검사의 피의자 신문에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조 전 장관 소환을 앞두고 방대한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15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와 상당수 혐의를 공유한다고 보고 있다. 조 전 장관에게 물을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 전 장관이 진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조사를 담당하는 검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같은 내용을 묻지는 않았다. 이날 조사는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사전에 작성한 질문지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이 진술을 거부하면서 조서에는 질문과 함께 진술거부권 행사에 대한 기록만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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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장관은 이날 조사를 마치고 나와 변호인단을 통해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전직 법무부 장관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은 “아내의 공소장과 언론 등에서 저와 관련하여 거론되고 있는 혐의 전체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서 분명히 부인하는 입장임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 전 장관은 “오랜 기간 수사를 해 왔으니 수사팀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면 법정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가려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 특수부 출신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은 검찰에 어떤 반박을 해도 어차피 기소될 것이니 자신의 패를 아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소된 피의자와 변호인이 받게 되는 검찰의 증거기록을 살펴본 뒤 재판에서 반박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현직 부장검사는 “조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선 그리 억울함을 호소하더니 왜 검찰청 지하주차장으로 몰래 들어와 받는 조사에선 입을 다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국 묵비권에 검사는 두 번 안 물어 … 조서엔 질문만 기록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피의자의 권리다. 하지만 진술거부권은 일반 시민이 아닌 권력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부분의 피의자는 억울해서, 또 검사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진술을 적극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진술거부권이 행사된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달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해 ‘패스트트랙’ 관련 수사를 받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있다. 보수 정부 시절인 2010년엔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검찰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한 전 총리는 재판에서도 검찰의 피의자 신문을 거부했다.

진술거부권 행사가 조 전 장관의 사법 처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도 법조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검찰 특수부 출신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교수가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활용해 가장 유리한 카드를 꺼낸 것”이라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이미 조 전 장관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고 기소 방침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며 “조 전 장관 입장에선 섣불리 해명했다 오히려 스텝이 꼬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기소될 것이라면 변호인과 함께 검찰의 증거기록을 본 뒤 법정에서 다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조 전 장관의 진술을 언론에 흘려 ‘망신주기식 수사’를 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진술거부권 행사가 조 전 장관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면 검찰과 법원에서 조 전 장관을 “반성 없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선 조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명분이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피고인에 대해 판사들이 ‘억울한 피해자’라 생각할지 혹은 ‘검찰 조사에 말문이 막힌 사람’이라 판단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날 조 전 장관 소환조사를 마친 뒤 검찰 관계자는 “(조 전 장관에 대한) 추가 소환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을 상대로 ▶가족이 출자한 사모펀드 의혹 ▶자녀들의 입시 비리 ▶웅동학원 의혹 ▶증거인멸 교사 등 공범 의혹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조 전 장관의 혐의 중 가장 핵심은 직무와 관련해 가족이 재산상 이익, 즉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다.

박태인·김수민·정진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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