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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 발언' 파문 보수논객 박홍 신부, 향년 77세로 선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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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총장을 역임한 박홍 신부가 2년 넘게 신장 투석을 받으며 투병해오다 9일 오전 4시40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당뇨병 합병증으로 인해 선종했다. 향년 77세.

고인은 1941년 경북 경주에서 6남4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가톨릭대와 대건 신학대를 거쳐 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89년부터 96년까지 8년간 서강대 총장을 지냈다. 당시 학생운동권을 향해 ‘주사파 배후 발언’과 ‘반공주의 발언’ 등을 던지며 극우논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1990년대 초에는 명지대 강경대 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분신 정국이 이어지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 위에 손을 올린 채 기자회견을 하며 운동권 배후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94년에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14개 대학 총장 오찬에서 “주사파와 ‘우리식 사회주의’가 제한된 학생들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깊이 (학원가에) 침투돼 있다.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북한의 사로청,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고 주장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논란이 커지자 박 신부는 고백성사나 면담을 통해 운동권 학생들한테 들었다고 말해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의장 등 신자 6명으로부터 고해성사 누설 혐의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 우루과이라운드 비준 문제로 인해 농민과 학생운동권의 격렬한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도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시위 배후에 주사파가 있고, 주사파 배후는 김정일이다”라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고인은 천주교 예수회 소속이며 세례명은 루카(누가)다. 1970년대에는 군사정권에 맞서서 싸웠던 진보적 인사였다.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자 서강대 학생들과 함께 추모미사를 집전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때도 학생 선동과 폭동 모의 혐의로 경찰에 끌려간 적도 있다. 89년 총장에 선출될 때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막걸리 총장’이었다. 총학생회 출범식에도 참석해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 학생운동권 내에주사파 세력이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보수ㆍ반공 성향으로 돌아섰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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