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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군무·무대 미술 일품|헝가리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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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8올림픽 문화축전을 계기로 동구권 연극·무용 등이 내한 공연을 가졌지만 연극은 단막에 불과했고, 소련 발레 스타 무대를 대했듯이 무용은 갈라 공연들이었다. 헝가리 국립발레단의 두 작품『지젤』과『백조의 호수』는 그런 의미에서 전막 공연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작년 문화축전 때 몇 개국 무용작품 중에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단연 헝가리 기외르 발레단이었다. 『마술수 푸로스페르』등 기외르 발레단 3작품은 그러나 모던발레였었다. 헝가리 국립발레단이 22일 첫 선을 보인『지젤』은 세 가지 면에서 이 발레단의 전통과 긍지, 그리고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전통은 역사의 이끼가 그렇듯 급조될 수 없는 것, 쌓여서 맥을 잇는다
1884년에 출범했으므로 백년의 역사에서 그들의 긍지를 읽을만하다. 고른 수준의 무용수들의 기량과 안무가 케베하지의 해석은『지젤』이 왜 낭만주의 발레의 정수인가를 실감케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느『지젤』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대미술이었다.
1막, 지젤이 사냥 나온 귀족청년 앨버트를 만나는 전원. 두 채의 시골집은 툇마루나 수줍은 지젤이 청년의 시선을 피해 앉은 나무의자 하나까지 정감이 갔다.
지젤의 운명을 예감케하는 그 늦가을의 빛깔, 아니 그보다 호수 건너 뾰죽집이 보이고 칙칙한 나무들이 무성한, 음산한 무덤가 2막 정경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무덤가 호수 샛길로 지젤이 바람처럼 지나가던 원경을 나는 어느『지젤』무대에서도 본 적이 없으니까.
뿐만 아니라 윌리의 여왕 미르타가 위엄 있는 독무를 추기 전 검은 숲 위로 별들이 명멸하는 것도 처음 대한다.
『지젤』 1막은 두 사람이 만나는 전주곡이고 2막 지젤의 환생부터가 말하자면 볼거리다.
『지젤』이후 로맨틱 튀튀(비치는 의상)가 유행했고 남자에 대한 원혼 때문에 상대방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백색 요정들은 춤을 춘다. 환생한 지젤은 2막 서두에서 그 유명한 원무를 추다(이때 지젤이 한발을 들고 추는 워킹 스텝)무덤가로 찾아온 앨버트와의 재회에서 그랑파드 되를 춘다(이 아다지오 2인무는 하프와 첼로 곡이 애절한데). 첫날 지젤 역을 맡은 메츠게르의 품위와 졸탄나기 주니어의 앨버트 역은 헝가리 발레 자존심답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주역 다음으로 큰 역인 요정들의 대모미르타의 체취는 강성일변도에 연연한 느낌도 든다.
『백조의 호수』에는 스타들이 전원 교체되는게 그들의 저력인 듯. 김영태<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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