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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을 보다 이회창을 떠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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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팀장

고정애 정치팀장

19년 전의 일을 떠올리려는 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정무·전략기획 업무를 맡아온 민주당 인사가 했다는 이 말 때문이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중진들을 집으로 보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공천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바로 2·18 공천 파동, 혹자에 따라선 ‘공천 대학살’이다. 계파 보스인 김윤환, 이기택 그리고 YS(김영삼)계 신상우 등이 날아갔다. 이들은 곧 격렬하게 반발했고 민국당을 창당했다. 특히 PK(부산·경남)가 요동쳤다.

직후 한나라당 당사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냉기가 흘렀고 적막했다. 한마디로 ‘흉가’였다. 이회창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여러 차례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느낀다”라고 썼다. 그러곤 “누구든 정치인에게 당의 공천 배제는 정치를 폐업하라는 선언과 같아 정치인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오욕이 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게 과연 정의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천 개혁의 성공을 위해 그들의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전 총재의 책사인 윤여준 전 장관에게 연락했다. 이 전 총재는 당시 윤 전 장관을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윤 전 장관이 건의한 대로 했었다. 싫다는 이에게 총선기획단장을 맡긴 것도 이 전 총재였다. 그 무렵 둘 사이 대화라고 한다.

▶윤 전 장관(이하 윤)=“야당은 양적 개혁을 못 합니다. 많은 사람이 나가 다른 세력을 만들면 선거가 어려워지니까요. 질적인 개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 총재(이하 이)=“질적인 게 뭘, 어떻게 하는 건가.”

▶윤=“구시대 정치의 상징성이 강한 소수의 인물을 바꾸는 겁니다.”

▶이=“그게 누군가.”

▶윤=“김윤환, 이기택, 황낙주….”

▶이=“당신 미쳤구먼.”

윤 전 장관은 “총재를 설득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단계에선 읍소도 하고 협박도 했다”고 했다. “이대로 나가서 기자회견 하고 집으로 가겠다. 총재가 국민에게 3김식 정치를 청산한다고 약속하고 (이행) 안 하면 총재가 국민에게 거짓말한 것 아니냐”라고 말이다. “총재가 마지막 순간에 OK했다. 어려운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빈자리는 오세훈·원희룡·김영춘 등으로 채웠다. ‘새 피 새 얼굴’이었다. 윤 전 장관은 “(민국당에선) 지역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없었다. 민심이 그렇게 무섭더라. 그 진통을 무릅쓰고 개혁공천을 한 걸 국민이 인정해준 것이다”라고 했다.

총선 이후 이 전 총재의 위상은 더 강고해졌다. 사실상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됐다. ‘대세론’이다. 윤 전 장관에게 물었다. 만약 공천을 그리 안 했더라도 그리 강력해졌을까라고. 그의 답을 명료했다. “안 된다. 어림없었다.” 그는 이 전 총재가 대선에서 패배한 건 “총선 이후에도 개혁적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비개혁적으로 보이다 나중엔 반개혁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여있다. 황 대표는 정치적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이 전 총재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나름의 카리스마 있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당을 통제할 힘이 있었다. 명확한 정치적 어젠다(3김 정치 청산)도 있었다. 황 대표에겐 없는 것들이다.

황 대표에게선 또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도, 난관을 극복해내려는 의지도, 그걸 통해 이루려는 미래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걸 보완해줄 실력 있는 참모도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천복(天福)”(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일지 모르겠으나 국민에겐 불운이다.

고정애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