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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남한은 '북한 샌드백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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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이 연일 우리 정부를 향해 보복적 성격의 '계산서'를 발부하고 있다. 지난주에만 이산가족 상봉 취소와 금강산 면회소 공사 중단, 개성공단 내 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북측 관계자 철수 등의 조치를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 13일 부산 남북 장관급회담의 판을 깬 북한 대표단이 떠나며 발표한 성명에서 "회담을 무산시킨 남측의 처사를 엄정하게 계산할 것"이라는 위협과 맞물려 있다.

이산가족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국민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태 후폭풍이 남북관계에 밀어닥치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그런데 정부의 반응은 "쌀.비료 지원 유보를 결정할 때 다 예견했던 일"이란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뭘 예상했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그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정부는 "북측의 조치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상황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배경을 설명한다. 북한이 대북지원 중단에 대한 신경질적인 대응을 보이는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는 듯하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전략적 차원에서 북한의 조치에 대해 일일이 대응방안을 공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잇따른 대남 '보복성 조치'에 대해 정부가 너무 한가롭게 대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사일 발사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던 정부 설명과 달리 북한은 남한에 대해 집중적으로 화풀이를 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비난과 욕설밖에 못하면서 말이다. 국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열심히 세금을 내 쌀.비료를 도와줬을 뿐인데 난데없이 빚 독촉을 받는 듯한 입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쌀.비료 중단을 통해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작심한 것 같지도 않다.

남북관계는 자꾸 수렁으로 빠져드는데 정부가 언론에 책임을 미루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통일부 당국자는 23일 "언론이 무작정 비판만 말고 정부가 뭘 했으면 좋을지 대안을 내놓는 기사를 써달라"고 주문했다가 기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국민이 지금 정부에 원하는 것은 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을 누그러뜨려 줄 미더운 대응책이다.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정부의 해법이 무엇인지 국민은 궁금해하고 있다.

이영종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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