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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남자' 윤건영 비공개 조의문 수령···北 6차례 조문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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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서 어머니 고 강한옥 여사의 운구행렬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김정숙 여사.[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서 어머니 고 강한옥 여사의 운구행렬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김정숙 여사.[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故)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한 조의문을 보냈다. 별도의 조문단 파견 대신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조의문만 전달하며 ‘조용한’ 조문 방식을 택했다.

北, 남측 인사 조문 총 6차례 #노무현 전 대통령 땐 조의문 보내고 2차 핵실험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때도 우리 측에 김 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보냈다. 당시엔 통일부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6월 12일 17시 판문점 통일각에서 귀측의 책임있는 인사와 만날 것을 제의한다”며 “우리측에서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인 김여정 동지가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통일각에서 조화와 조의문을 받아왔다. 당시 남북관계도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정체를 벗지 못할 때였다.
이번에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판문점에서 비공개로 북측 인사를 만나 조의문을 받아온 점에서 지난 6월 때보다 남북관계가 더욱 엄중해진 상황이 반영됐단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오른쪽)이 6월 12일 오후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오른쪽)이 6월 12일 오후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지난 23일 “금강산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한 후 정부의 금강산 실무회담 제의도 거부한 채 서면 협의로 맞서고 있다.

북한은 그러나 남북관계가 원활하거나,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있을 땐 남측에 직접 조문단을 파견하며 대화 공세를 폈다.
200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북한이 남측 주요 인사에 대해 조문한 사례는 이번을 포함해 총 6번.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2001년 3월),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2003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2009년 5월),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8월), 이희호 여사(2019년 6월), 강한옥 여사(2019년 10월)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해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해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01년 3월 21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하자, 북한은 이틀 후인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전을 전했고 24일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강종훈 서기장 등 4명으로 구성된 조문단을 파견했다. 북한이 남측에 보낸 최초의 조문단이었다. 이들은 고려항공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방남해 정주영 회장 자택에서 조의를 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 등 조문단 일행이 숙소인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 도착한 모습. [중앙포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 등 조문단 일행이 숙소인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 도착한 모습. [중앙포토]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이명박 정부 시절로 남북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때였다. 그러나 북한은 김 전 대통령 장례에 고위급 조문단을 파견하며 당국 간 대화 계기를 마련하고자 애썼다.
당시 북한은 하루 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보내고, 사흘 뒤인 21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6명의 조문단이 고려항공을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해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8월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방남한 북한 사절단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악수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이 8월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방남한 북한 사절단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악수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당초 1박 2일 일정으로 왔던 북한 조문단은 체류를 하루 연장했다. 22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을 면담했고 23일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조문단이 김 위원장의 ‘특사’였던 셈이다. 북측은 2014년 8월 17일 김대중 대통령 5주기에는 개성공단에 조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별세 때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약식으로 애도했다.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별세하자, 중통이 하루 뒤 조전을 보도했다. 이어 조문단은 보내지 않고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현대가 금강산지구에 마련한 분향소를 방문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엔 중통이 이틀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만 보도했다. 불과 3개월 뒤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대규모 조문단을 보낸 것과 대조된다. 이유가 있었다. 북한은 당시 조전을 보도한 지 4시간 만에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미리 준비한 핵실험으로 인해 조문단을 보내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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