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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 칭기즈칸 '야수의 리더십' 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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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800년 전 칭기즈칸 기마부대를 재현한 몽골군 병사들이 20일 초원을 달리고 있다. 당시 몽골군은 하루 200km까지 진격하며 영토를 넓혀 갔다. [세렝게 AP=연합뉴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저 끝-. 처음엔 옅은 구름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흙먼지로 변했다. "둥둥둥둥…."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기둥처럼 솟더니 거대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500마리의 말들이 질주하면서 내는 발굽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황토 먼지를 뒤집어쓴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에서 속도는 그 어떤 것도 압도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 빠름은 인터넷으로 무장하고 대륙을 마구 넘나드는 21세기 '디지털 유목민'의 뿌리가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20일 오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세렝게의 투그리크 대초원의 시계는 1206년으로 돌려져 있었다. 몽골 정부가 칭기즈칸의 제국 건국 8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큰 축제를 마련한 것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최강의 기마군단이었던 칭기즈칸의 군대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걸음마보다 말 타는 걸 먼저 배운다는 칭기즈칸 후예들은 기동력으로 공간을 제압하고 근접한 거리에선 빼어난 궁술을 자랑했다. 화살은 적진 후방까지 날아가며 대오를 흔들기 시작했다. 다른 군사들이 창을 풍차처럼 돌리며 달려들었다. 한 차례 적진을 뒤흔든 뒤 이들은 재빨리 전열을 재정비했다.

종대를 횡대로 바꾸었다. 그러곤 칭기즈칸의 오른팔로 제국 건설의 1등 공신이었던 수부타이로 분한 장수가 앞으로 나왔다. 적장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상대는 예상보다 강했다. 몇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적장이 숨을 돌리는 찰나였다. 몽골의 장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적장의 무거운 몸이 쿵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수부타이가 지휘한 몽골 부대의 완벽한 승리였다. 말과 군사는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돼 적을 섬멸했다. 13세기 칭기즈칸은 그렇게 중국을 평정한 뒤 러시아를 넘어 카스피해 국가들과 중동까지 장악했다. 그러고 보니 평화롭게 보이던 평원엔 당시의 피 냄새와 야성(野性)이 흐르는 것 같았다.

두 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 재현 행사를 지켜본 일본인 관광객 다카하시 데쓰야(60)는 "바람같이 빠른 칭기즈칸의 기마군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왔다는 막시 크로코아비치(46)는 "칭기즈칸의 군대가 유라시아 대륙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었는지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책에서 칭기즈칸 부대의 잔학성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며 "그의 제국은 인간에게 숨겨져 있는 야수성을 바탕으로 건설됐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렝게(몽골)=강병철 기자

◆ 칭기즈칸 제국 건국 800주년 기념 행사=몽골 정부가 '칭기즈칸의 부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칭기즈칸이 정복한 나라를 지금의 국가로 따져 보면 30개국, 30억 명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 몽골은 인구 27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은 600달러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외국인에게 몽골을 알리고 달러도 번다는 목적도 있다. 외국인의 이 행사 입장료는 65달러에 달한다. 내국인 입장료는 10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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