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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엔 아직도 경제 현실 왜곡이 남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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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제야 고백하기 시작한 것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그제 “올해 경제성장률은 2.0%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석 달 전 기획재정부가 내놨던 2.4% 전망을 대폭 낮췄다. 금융위기에 허덕였던 2009년(0.7%)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실토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부 기조와는 사뭇 다른 발언이다. 그간 정부는 사방에서 울리는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에 가까운 입장을 고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고,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불과 1주일 전 “한국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6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튿날 문 대통령은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며 “경제가 엄중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바로 뒤이어 경제부총리는 성장률 전망을 뚝 떨어뜨렸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하나같이 암울한 소식이다. 동시에 희망의 싹이 보이는 태도 변화다. 현실을 인정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현실을 직시하는 것인지 아직은 미심쩍다. 경제의 심각성을 100%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황덕순 일자리수석은 어제 청와대 브리핑에서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월급 27만원 받는 어르신 단기 일자리만 잔뜩 늘었는데도 그랬다. 황 수석은 또 “주당 36~52시간 핵심적인 근로시간대에서 가장 큰 폭의 고용 증가가 있었다”고 했다. 고용의 질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어이없는 통계 왜곡이다. 36~52시간 근로자가 늘어난 것은, 주 52시간 근로제로 인해 종전 ‘52시간 이상 근로자’가 ‘36~52시간’으로 대폭 옮겨왔기 때문이다. 전체로 보면 36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만 확 늘어난 게 정확한 현실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39%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도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주된 원인은 경제·민생이었다. 가라앉는 경제 현실을 외면하고 낙관론을 펼치며 경제학자들이 “어느 족보에 있는지 보고 싶다”는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인 결과다. 그로 인해 국민 살림살이엔 주름이 졌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당연히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데 진력해야 한다. 늦었지만 정부는 심각한 경제 상황을 어느 정도 인정함으로써 경제를 되살릴 첫 단추를 끼웠다. 하지만 정부엔 아직도 현실 부인과 왜곡이 남아 있다. 말끔히 걷어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국민 앞에 드러내야 한다. 병은 감출수록 깊어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