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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국민 평균 5등급 실감"···저주의 말 '국평오' 왜 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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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국평오’를 아시나요? ‘국민들의 평균 수능 등급은 5등급’의 줄임말인데요. 비슷한 단어로는 '대평오'(대한민국 평균은 5등급)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맞는 말로 보입니다. 수능 등급체계가 1~9등급으로 이뤄진 걸 생각하면요.

<제7화> 국평오 #신조어 ‘국평오’를 아십니까? #대학교별 익명 커뮤니티 위주로 퍼져 #“소통되지 않는 답답함을 표현하는 단어” #“획일적인 서열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이 단어는 남을 비하할 때 종종 사용됩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예시들을 살펴볼까요.
“댓글을 보면 국평오인 게 실감 난다” “국평오인 걸 감안하면 ‘구형’과 ‘선고’를 구분 못 할 만하다”는 식으로 '국평오'가 쓰이는 거죠. 한마디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지 않다는 뜻입니다. 특정 소수자 집단을 비하하는 용어가 아닌 국민 전체를 향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차별·혐오 표현들과는 다릅니다.

"국민 평균은 5등급?"

이 신조어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입시 관련 커뮤니티에서만 쓰였는데요. 요즘은 대학교의 익명 커뮤니티에서 종종 쓰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웃고 넘길 신조어일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용어일까요? 밀실팀은 대학가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자 "국평오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몇몇 학생은 '도를 아십니까?' 취급을 했지만 일부는 무슨 뜻인지 안다며 입을 열었습니다. 인터뷰와 함께 밀실팀은 20대들의 조금 더 솔직한 속마음을 들어봤습니다.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이틀간 '1등급'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서울대 캠퍼스 곳곳에 박스를 설치해 학생들이 익명으로 이 용어에 대한 생각을 쪽지에 적어 넣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나랏일을 보니 공감 가"vs"비하 정당화하는 발언"

"국민 5등급이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 걱정됩니다" "매우 적절한 표현"  

'국평오'라는 단어에 공감하는 학생들의 의견입니다. 대학생 강모(20)씨는 "이 단어는 실제 친구와 대화할 때가 아닌 온라인상 '에브리타임'과 같은 익명 공간에서만 주로 사용된다"며 "사실 확인이 안 된 단순한 의혹 제기, 기사 등을 믿고 감정적으로 선동되는 모습을 볼 때 솔직히 '국평오'를 실감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계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요. 그는 "민주주의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좀 더 많은 사람이 정치·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몽운동이 일어나서 국민들이 객관적인 사실 및 상황에 높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적어냈습니다.

일부는 오히려 국민 평균은 5등급에 못 미치는 6급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국평오가 아니라 6등급인 것 같습니다. 요즘 나랏일을 보니까" "수능 안치는 애들 고려하면 국평육임"이라고 적은 겁니다.

물론 비하성 발언이라는 지적 역시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산술적으로는 당연히 평균 5등급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뜻으로만 사용할까요? '조센징'도 조선인이란 뜻이지만 우린 이것을 멸칭으로 받아들입니다"고 적었고요. 서울대 의예과 재학생 황지후(20)씨는 "'국민 개돼지 발언'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다수의 반응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납득이 안갈때 사용되는 걸 봤다"며 "이 단어를 사용하는 건 '팩트제시' 목적이 아니라 '비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위험한 발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 학생은 "세상에는 생각보다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 많다는 걸 잊지 말라. 내 주변 사람들이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음. 내가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이들은 '국평오'를 외칠까?

그렇다면 이 단어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학생 김모(24)씨는 "태극기 집회나 그 반대에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검찰개혁 지지 집회에서 서로 논리적이지 않게 자신의 말만 관철시킬 때 서로를 '국평오' 취급을 한다"며 "어느 쪽이든 논리보단 감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현상 자체를 지적하는 데 적합한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실 대화로 서로를 이해시킬 수 있는데 이 단어를 서로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소통의 기회를 아예 차단하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올바르지는 않지만 다수의 의견이 흔하게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는 답답한 경우를 보면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고 했습니다. 즉,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끼리 설득을 하려는 노력과 소통이 부족한 답답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거죠.

이 단어가 나온 배경엔 '지나친 서열화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고려대 재학생 김모(23)씨는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학생들을 학업으로 경쟁시켜 상대적인 등급을 매겼고, 사회는 수능 등급을 인간의 평가 기준으로 너무 과하게 작용하도록 만들었다"며 "성적 지상주의, 서열주의 사회로 인한 왜곡된 사고방식이 국평오라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익명의 한 학생 역시 "사람에 대한 획일적인 서열화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인 동시에 구성원들 사이 소통되지 않는 답답함을 나타낸 표현"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으로 인생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강한 학벌 사회임을 보여주는 용어"라며 "국가 경제가 어렵고 경쟁이 과잉될수록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려는 사회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이라고 했고요.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10~20대는 지나치게 경쟁 위주의 교육을 받아온 세대라 차별적인 용어를 어릴 때부터 학습해 왔다"며 "좌우 진영논리를 떠나 극단의 주장이 난무하고 팽배하게 대립하는 상황에 대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임 교수는 "요즘 젊은 층은 기성세대였으면 안 꺼냈을 말을 하는 소신 있는 세대인 만큼 다양한 토론으로 사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국평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지아·최연수·편광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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