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몇 번일까요?
‘인적성 검사’라고 불리는 직무적성검사의 예시 문제입니다. 직무적성검사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죠. 이런 문제를 40~60초에 풀어야 면접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제 2화> 인적성 #대기업 공채 필수 관문 '인적성' #부장·과장 8명 인적성 시험보니 #인적성 잘 풀면 일도 잘 할까 #"요즘 인적성엔 미적분까지"제>
취업준비생들은 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타이머를 켜놓고 문제를 푸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험을 ‘과장님’ ‘부장님’들이 직접 풀어보면 몇 점이 나올까요. 밀실팀은 지난 7월 19일부터 25일까지 국내 대기업과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8~21년차 대리, 과장, 부장급 재직자 8명을 만나 직무적성검사를 직접 풀도록 했습니다.
부장님, 인적성 점수는 평균 몇점?
결과는 어땠을까요? 취준생들의 한탄은 꾀병이 아니었습니다. 재직자들의 부장적성검사 결과는 처참했는데요. 100점 만점에 최고점은 50점, 최저점은 0점으로 평균 16.25점이었습니다. 기업들은 채용 시 합격 커트라인이 몇 점인지 밝히지 않아 이 점수로 합격이 가능한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취업 준비생들은 이 점수로 합격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말합니다. 상반기 삼성그룹과 SK그룹 공채에 지원했던 김은익(24)씨는 “취준생들 사이에서 영역별 60점 이하는 과락이라는 말이 떠돌고 문제집에도 그렇게 적혀있었다”고 했습니다.
같은 달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H그룹사 15년차 A과장. 그는 직무적성검사 시험지를 받아들자 "하나도 못 풀 것 같다"고 중얼거렸습니다. 10분 동안 그가 푼 문제는 6문제. 그중 정답을 맞힌 건 단 한 문제뿐이었습니다. A과장은 입사 후 단 한 번도 진급이 누락되지 않고 승승장구해왔습니다. 업무성과 상위 15% 안에 들어야 가능한 결과인데요. 하지만 그는 ‘색종이를 다음과 같이 접은 후 가위로 자르고 펼쳤을 때 나오는 모양을 고르시오’를 묻는 문제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다른 회사 과장님, 부장님들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SK그룹사 21년 차 재직자 B씨는 문제지를 받아들자 “뭐야 이게?”라고 말한 뒤 턱을 괴고 문제지를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5분이 지났다고 알리자 “망했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옆에서 함께 문제를 풀던 18년 차 재직자 C씨 역시 “허허” 헛웃음만을 내뱉을 뿐이었죠. 이들은 각각 한 문제, 세 문제를 맞혔습니다.
S그룹사 15년 이상 재직자 3명 역시 고난이도 문제 앞에서는 쩔쩔맸습니다. 제한시간이 끝났다고 알려주자 이 중 한명은 “혹시 뒤쪽에 더 쉬운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며 펜을 쉽게 놓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입사할 때도 직무적성검사를 봤지만 이 정도 난이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D씨는 채점결과를 알려주자 “5번 문제 정답을 4번에서 5번으로 바꿨는데 아깝게 틀렸다”며 탄식했습니다.
시속을 계산하는 문제 옆에 공식을 끄적거리다 결국 풀지 못한 그는 “어차피 회사 들어가면 엑셀이나 계산기를 쓰는데 차라리 엑셀 함수명을 물어보는 게 낫지 않냐"고 묻기도 했죠. 한 문제밖에 맞히지 못한 그는 “20대 때 준비하고 문제를 풀었으면 50점은 맞았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문제를 함께 푼 동료는 “다른 기업 사람들은 몇 점이나 나왔냐”고 은근슬쩍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AI 시대에도 이렇게 사람 뽑나"
이런 시험이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을 선별할 수 있을까요. 재직자들은 똑똑한 사람은 뽑을 수 있어도 일을 잘하는 사람을 골라내긴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시중 은행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8년 차 E대리는 "인공지능(AI)도 나온 시대에 이렇게 사람을 검증하냐"며 "회사에서 하는 일엔 정답이 없다. 그런데 답이 있는 정해진 시험으로 사람을 걸러내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 ‘은행 업무는 숫자를 다루기 때문에 수리 문제는 직무와 관련이 있지 않냐’고 묻자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같은 대출 관련 계산만 할 뿐 이렇게 복잡한 계산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또 다른 S그룹사 재직자 역시 “마케팅, 프로그래밍 등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지원자는 이런 시험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결국 공부 잘했던 평이한 친구들만 합격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시험을 채용과정에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문제를 맞힌 F씨는 “수능과 마찬가지로 시험 준비를 많이 한 지원자들에게 입사 기회가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재직자는 "기업이 자선단체가 아니니 지원자를 걸러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죠.
"객관적 도구" vs "실무와 상관없어"
기업들은 이런 시험이 지원자들을 선별할 수 있는 객관적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삼성그룹의 GSAT, 현대그룹의 HMAT, SK그룹의 SKCT 등 그룹별로 직무적성검사를 개발해 시행 중인데요. 기업별 차이는 있지만 보통 소금물 농도 구하기, 입체도형의 전개도 찾기, 순서에 맞게 문장 배열하기 등이 포함됩니다.
삼성전자 측은 이 시험이 단순한 IQ 테스트가 아닌 몇십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로 개발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국내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인적성 검사는 학점 등 스펙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인재에게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직무 역량을 예측할 수 있는 객관적인 도구"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취준생들의 부담은 큽니다. 인적성 문제집은 2만원 대고, 인적성 인터넷 강의는 20만원 대니까요. 지난해 취업사이트 인크루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준생 한 명당 인적성 준비 비용으로 1년에 평균 30만2000원을 지출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취업도 할 수 없다는 뜻의 '무전무업(無錢無業)'이라는 말이 유행어로 떠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일부 전문가들 역시 이런 채용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채용 시 인적성 검사를 거의 보지 않는데 한국에선 블라인드 채용을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에 인적성 검사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의도와는 다르게 단순히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 더 많이 뽑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종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겸 미래인재센터장은 "요즘 적성검사엔 미적분까지 나오는데 누가 봐도 직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채용방법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특정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지아·최연수·편광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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