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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만 되는 부동산 싫어" 주택·토지 상속 거부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35)

2025년에 일본의 모든 단카이 세대가 75세를 넘는다. 고령 인구가 많이 늘어나면 연간 사망자 수는 2016년 131만명에서 2030년에는 160만명까지 늘어난다. 사망자가 늘어나면 상속 건수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초고령사회에서 부모가 남긴 재산의 상속등기를 하지 않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현금보다 유동성이 떨어진 부모의 주택과 토지의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인구감소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대폭 늘어나면서 그 지역의 주택과 토지 수요와 가치도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에 있는 주택과 토지를 사려는 사람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거래가 줄어들고 토지의 가치도 더욱 떨어진다.

토지는 ‘부(負)의 자산’

주택과 토지의 수요와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상속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 pixabay]

주택과 토지의 수요와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상속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 pixabay]

이렇게 토지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상속 포기의 근본 원인이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 상속인이 취득한 토지의 재산액수는 약 5조1000억엔으로 상속재산 전체의 41%를 차지한다. 총무성 통계에서도 택지자산은 가계자산의 52.5%를 차지한다.

그러나 2014년 공시지가를 보면 대도시권의 주택지, 상업지 모두 6년 만에 상승했지만, 지방은 장기간 하락하고 있다. 내각부에 따르면 땅값의 하락 영향으로 토지자산액은 2014년 1118조3000억엔으로 감소했다. 1990년대 말 피크 시점의 2477조4000억엔과 비교하면 약 1359조엔이 감소한 것이다.

2015년 토지문제의 국민의식조사(국토교통부)에서 “예·적금과 주식보다 토지는 유리한 자산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사람이 무려 41.3%(대도시 37%, 지방 43.4%)로 높게 나타났다.

인구감소의 영향으로 토지 수요가 감소하고 땅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토지를 자산이라기보다도 관리비용이 드는 ‘부(負)의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번거로운 상속절차를 밟아 재산세를 납부하면서까지 매수자도 나타나지 않는 지역의 토지를 취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산가치가 없는 토지를 복잡한 등기절차를 거쳐 취득해 관리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부동산 등기는 의무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등기에 따른 노력과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사망한 부모의 명의 그대로 방치하는 게 편하다. 상속받아도 처치 곤란한 시골의 토지를 일부러 비용을 들여 상속등기를 하지 않는 것은 단기적인 경제적 합리성 측면에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상속인에게 토지의 자산가치가 있는지가 상속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제 토지의 가치가 낮다면 상속등기를 하지 않는다.

등기부상 소유자 주소가 ‘만주국’으로 표기된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이러한 토지가 오랫동안 방치되면 법정 상속인이 대폭 늘어나고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상속인 조사에도 시간과 비용이 대폭 늘어난다.

또한 외국인이 부동산 투자로 토지를 소유할 경우 상속이 해외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외국인은 호적도 주민 표도 없기 때문에 등기하지 않으면 소유자를 추정하기 어렵다. 2016년 외국자본이 홋카이도에서 소유하는 산림면적은 2441ha에 이른다. 현행 토지제도로는 이러한 토지 소유자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현행 토지제도로 소유자를 찾기 힘든 토지들이 늘어나며 국가의 고민도 늘어나고 있다. [중앙포토]

현행 토지제도로 소유자를 찾기 힘든 토지들이 늘어나며 국가의 고민도 늘어나고 있다. [중앙포토]

앞으로 상속 건수가 늘어날수록 많은 도시 거주자가 지방 토지의 상속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는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대도시로 이동한 사람이 많다. 단카이 세대의 자녀는 부모가 태어난 지역을 방문한 경우가 많지 않다. 부모의 출신 지역에 상속받을 토지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모른다. 도시에 사는 자녀는 부모의 고향에 있는 토지를 이용할 생각도 없다.

1960년대부터 고향을 떠나 대도시권에 취업해 사는 사람은 본가에 돌아가지 않고, 지방의 부모 재산을 상속받고 있다. 많은 대도시 거주자가 지방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국토의 40%를 차지하는 사유림은 지역에 살지 않는 비거주자가 소유하는 면적이 24%에 이른다. 토지 소유자가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것도 토지 소유자 파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국토교통성이 2016년 지적조사를 실시한 1300지구의 약 62만필을 조사한 결과 20.1%는 소유자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소유자 불명 토지문제 연구회’는 이러한 자료를 기초로 상속등기를 하지 않았거나 소유자의 주소가 바뀌어 연락되지 않는(소유자 불명) 토지를 조사했다. 소유자 불명으로 간주할 수 있는 토지면적은 전국 약 410만ha에 이르렀다. 일본의 규슈(약 367만ha)보다 넓은 면적이다.

앞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소유자 불명 토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소유자 불명 토지문제 연구회는 부모의 재산상속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2020~2040년에 발생하는 토지 상속의 약 27~29%가 미등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2040년까지 소유자 불명 토지가 310만ha가 추가로 늘어난다. 현재 410만ha와 합치면 그 면적이 720만ha에 이르고 홋카이도의 90%나 된다.

소유자 불명 토지가 늘어나면 재산세를 징수하기 어렵고 소유자를 찾는 행정비용이 발생하는 등 경제적 손실이 크다. 소유자 불명 토지문제 연구회에 따르면 2016년에만 약 1800억엔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2017~2040년까지의 누적손실은 5조9100억엔, 연간 3100억엔으로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유자불명 토지, 계속 늘어나

소유자 불명 토지를 국가 사업에 활용하려고 해도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나 사업 진행에도 문제가 된다. [사진 pixabay]

소유자 불명 토지를 국가 사업에 활용하려고 해도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나 사업 진행에도 문제가 된다. [사진 pixabay]

공공성이 높은 사업에 토지를 활용하려고 해도 원칙적으로 모든 소유자의 양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유자를 찾는 지자체의 사무 부담도 대폭 늘어난다. 공공사업과 민간 재개발사업에 필요한 용지를 취득하기 어렵고, 농지의 집적과 산림 관리에도 지장을 준다.

소유자 불명 토지의 확대는 개인의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주택 밀집지역에서 좁은 도로를 확장하려고 해도 협의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좁은 도로에 차량이 통과할 수 없으면 화재를 진압할 수도 없다. 단 한 채 때문에 집합주택의 매각계획 자체가 좌절된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9년 6월 소유자 불명의 토지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실시했다. 소유자 불명 토지에 최대 10년간 사용권을 설정하고, 공원과 농작물 직거래소 등 공익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토지를 취득할 때 절차를 간소화하고,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지자체의 판단으로 공유화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소유자가 나타나면 원칙적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또한 행정기관이 공적 정보를 이용해 토지 소유자를 비교적 간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장기간 상속등기를 하지 않는 토지는 등기 사무직원이 그 취지를 등기부에 기재할 수 있는 제도도 만들어진다. 소유자 불명이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등기를 촉진하는 제도도 도입될 전망이다. 앞으로 소유자 불명 토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각과 상속 등으로 토지 소유자가 바뀔 경우 등기 의무화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저무는 ‘토지 신화’ 시대

지금까지 일본에서 ‘토지신화’에 의해 땅값은 계속 올랐고. 토지는 자산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인구감소 시대에 토지 수요가 줄면서 국토와 토지 관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시기를 맞이했다. 처분하기 어려운 토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토지 제도 자체가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변화에 사회구조와 법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감소, 고령화, 글로벌화라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토지관리제도의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구감소 사회에 맞춰 등기 의무화, 토지소유권 포기 규정 제정, 상속과 재산세 형태 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형종 한국금융교육원 생애설계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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