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안 했는데 검사 기소유예에 뿔난 A씨...헌재 “기소유예처분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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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을 했다며 신고당했지만 증명할 수 없어 검찰이 내린 기소유예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형법 제61조 제1항 위헌제청 등 총 56건 선고를 위해 재판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형법 제61조 제1항 위헌제청 등 총 56건 선고를 위해 재판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씨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지난 2월 새벽 1시, 사무실 근처에서 술자리가 끝난 A씨는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A씨의 아파트에 도착해 A씨와 대리운전자 B씨는 주차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B씨는 자신이 차를 주차하고 난 뒤 A씨가 운전석에 앉아 운전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자 B씨는 A씨와 말다툼을 한 녹음파일과 불이 켜져 있는 차의 뒷부분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건네줬다. 검찰은 A씨가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리운전 기사인 B씨의 진술만으로는 기소가 어렵다고 보고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란 혐의는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 등을 검사가 판단해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처분이다. 기소는 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소원을 통해 불복할 수 있다.

A씨는 “B씨가 차의 시동을 끄지 않은 채 하차하는 바람에 시동을 끄고 열쇠를 뽑기 위해 운전석에 앉았을 뿐”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청구인에게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내려진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자의적인 증거판단, 수사미진, 법리오해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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