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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조국 엄정 수사”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더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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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권의 행사 방식, 수사 관행, 조직 문화 등에 대한 개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금요일에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주문했다. 업무일 기준으로는 이틀 연속 검찰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항간에는 “조국 장관에 대한 수사를 기어코 막아야 하는 뭔가 특별하고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 연거푸 ‘윤석열 검찰’ 공개 압박 #시중 여론은 ‘조 장관 엄격 수사’ 쪽이 우세 #‘특수부 수술’은 수사 끝난 뒤 착수가 순리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지난 토요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집회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많은 시위자가 모여 여권이 고무된 듯한데,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조 장관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원하는 국민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6, 27일 조사(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에서 ‘조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가 지나치지 않다’는 응답이 49%로 집계됐다. ‘지나치다’ 쪽은 41%였다.

무엇보다 군중을 앞세운 정치는 위험하다. 오는 3일에는 조 장관 일가에 대한 엄격한 수사와 문재인 정부 반성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이날 모인 사람이 지난 토요일 집회 참석자보다 많으면 대통령이 입장을 바꿔 새 메시지를 발표할 것인가. 주말마다 양측이 세 대결을 벌인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거리 정치’에 의존하는 권력은 바로 그 방식에 의해 역풍을 맞게 된다. 법치를 훼손하면서 포퓰리즘적 선동에 기대어 나라를 이끌어 가려 하는 정권은 정상적인 민주 권력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거론한 검찰의 ‘수사 관행’과 ‘조직 문화’는 물론 개선될 필요가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검찰이 이른바 ‘적폐’ 수사를 할 때 언론들이 그 점을 무수히 지적했다.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혐의를 꿰맞추는 수사가 분명히 있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특수부 조직을 없애거나 크게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정부인데, 그때는 대통령과 청와대 민정수석(조 장관)이 가만히 있었다. ‘특수부 칼’을 내려놓기 싫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청와대와 여당이 특수부 축소를 얘기하니 앞뒤가 영 맞지 않는다. 그러니 대통령의 개혁 주문까지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검찰 개혁,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조 장관 수사가 끝난 뒤에 주장하라. 개혁이 범법자의 방패가 되면 그 순간 개혁은 개악이 된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화가 많이 나셨다고 들었다. 더 강한 수위로 말씀하시려다가 많이 절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화났다고 검찰을 이렇게 압박해도 되는가. 21세기 대한민국이 절대군주제 국가인가. 대통령이 무슨 연유에서 분노에 휩싸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검찰총장을 임명한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지금 국민도 화가 많이 나 있다. 대관절 국민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난리를 겪어야 하나. 어떤 외풍 속에서도 살아 있는 권력인 조 장관에 대한 수사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엄정하게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