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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한국 배구 체질 개선한 라바리니

중앙일보

입력

30일 월드컵을 마치고 입국한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30일 월드컵을 마치고 입국한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달라졌다. 에이스 김연경(31·엑자시바시)에 의존하지 않고 선수 전원을 기용하는 토털 배구로 진화했다. 변화를 일으킨 건 스테파노 라바리니(40·이탈리아) 감독이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3월 새 사령탑으로 라바리니 감독을 선임했다. 비선수 출신임에도 라바리니는 이탈리아 클럽 팀 및 청소년여자대표팀, 독일여자대표팀 등을 지도했다. 지난해에는 브라질의 미나스 테니스 클럽을 세계클럽선수권 정상에 올려놓았다. 여자 배구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지도자이기도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지난 3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6개월 동안 네 개의 대회를 치렀다. 발리볼네이션스리그, 올림픽 대륙간 예선, 아시아선수권. 그리고 월드컵까지 무려 36경기를 치렀다. 물론 부상과 체력 안배 등을 위해 모든 선수들이 모든 대회를 뛴 건 아니었지만 강행군인 건 확실했다. 강성형 코치도 "정말 힘든 일정이었다. 선수들이 정말 고생했다"고 말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그동안 훈련의 성과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사진 국제배구연맹]

여자배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그동안 훈련의 성과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사진 국제배구연맹]

월드컵 전까지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물음표가 많았다. 네이션스리그에선 4주 동안 1승을 거두는 데 쳤다. 다행히 보령에서 열린 마지막 시리즈에서 2승을 거둬 16개국 중 최하위를 면했다. 대륙간 예선 직전엔 주전 세터 이다영(현대건설)과 백업 안혜진(GS칼텍스)이 동시에 빠지는 악재도 겪었다. 홈팀 러시아를 상대로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서다 역전패해 다 잡은 도쿄행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우승을 노리며 정예멤버를 가동했지만 18세 이하 멤버를 주축으로 한 일본에 발목을 잡혀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부상 선수들이 모두 돌아온 월드컵에서 한국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숙적 일본에 설욕을 한 것은 물론 세계랭킹 1위 세르비아, 4위 브라질을 꺾었다. 6승 5패. 12개국 중 6위를 차지했다. 세르비아는 보스코비치 등 주전 선수들이 빠졌고, 중국과 러시아에겐 0-3 완패를 당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성적이었다. 4년 전 대회(5승 6패, 6위)와 비교해도 1승을 더 거뒀다.

라바리니 감독은 부임 후 '스피드 배구'를 강조했다. 4명의 공격수가 동시에 공격을 준비하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뒤처지고 말았다. 미들블로커 활용도는 여전히 아쉽지만 삼각편대를 확실히 구성했다. 그동안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던 김희진은 대표팀에서 '라이트'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이재영도 김연경 뒤를 받치던 수준을 뛰어넘어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재영은 "원래 후위공격을 좋아하고 자신있다. 감독님이 백어택 지시를 많이 내려서 좋다"고 말했다.

두 선수의 성장은 기록으로도 드러났다. 이번 대회에서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의 몸 상태를 감안해 자주 휴식을 줬다. 세터 염혜선과 이다영에게도 이재영과 김희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주문했다. 그러면서 환상적인 득점 분포가 만들어졌다. 이재영이 143점(득점 10위), 김희진이 139점(득점 12위), 김연경이 136점(득점 14위)을 올렸다. 세 선수 뿐만 아니라 대표팀을 거쳐간 모든 선수들이 새 감독의 전술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3-4위전 중국과 경기 도중 이야기를 나누는 김연경과 라바리니 감독. 김민규 기자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3-4위전 중국과 경기 도중 이야기를 나누는 김연경과 라바리니 감독. 김민규 기자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라바리니 감독은 "만족스럽다. 이번 대회에서 새롭게 온 선수들과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경기를 치르면서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전술적인 부분도 잘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연경은 우리 팀 최고의 보배이자 무기다. 김연경이 잘 하는건 알지만 그를 이용한 플레이에 맞춘다면 우리 팀이 발전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여러 선수를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술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한국 배구가 김연경에만 공을 올리는 게 약점이었는데 여러 선수를 활용한 부분이 좋았다"고 평했다.

대표팀은 이제 3개월 간 이별의 시간을 가진다. 내년 1월 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아시아 예선까지는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라바리니 감독도 전임이 아니기 때문에 이탈리아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라바리니 감독은 2019-20시즌부터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1부리그 부스토 아르시치오를 지휘한다. 그동안 라바리니 감독은 화상통화를 통해 클럽팀에서 맞이할 새 시즌을 준비하기도 했다. 세자르 코치는 김연경이 뛰는 엑자시바시의 라이벌인 바키프방크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물론 라바리니 감독도 이 문제에 대해 복안을 마련했다. 라바리니 가독은 "어제 대회가 끝난 뒤 미팅을 통해 선수들과 면담을 했다.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컨디션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해 달라고 했다"며 "선수들의 시즌 경기 모습을 계속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프로젝트를 선수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여기에 맞춰 훈련해야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배구에게 남은 3개월은 중요한 시간이 될 듯 하다.

인천공항=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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