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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맛과 향, 많이 마셔봐야 잘 느낀다? 그건 아니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35)

“위스키 초보인데 모임에 참가해도 될까요?”
위스키 모임을 열면 위와 같은 문의가 온다. ‘위스키 초보’라니. 위스키 마시는 일이 운전면허처럼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도로에서 긴장하는 초보 운전자처럼 자신을 초보라 생각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위스키의 향과 맛은 많이 마셔본 사람이 더 잘 느낀다?
세상에 나온 위스키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대중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는 향과 맛을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그 외의 위스키는 맛과 향이 모두 다르다고 봐도 좋다. 블렌디드 위스키마저 시대별로 맛이 조금씩 다르니까. 그래서 까마득히 많은 수의 위스키를 떠올리면, 많은 종류를 마셔본 사람에 비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초보라 느낄 만하다. 그렇다면, 많은 위스키를 접한 사람일수록 위스키의 향과 맛도 더 잘 느낄까?

많은 위스키를 마셔봤다고 위스키 맛을 더 잘 느낄까? [사진 김대영]

많은 위스키를 마셔봤다고 위스키 맛을 더 잘 느낄까? [사진 김대영]

그렇지 않다. 물론, 다양한 위스키를 마셔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스키의 향과 맛을 더 많이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더 빨리 향미를 캐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잘 느끼는 것과 빠르게 느끼는 것은 다르다.

처음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라도 섬세하게 향을 맡고 맛을 보다 보면, 위스키가 가진 모든 풍미를 잘 느낄 수 있다. 여기에 표현력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제아무리 위스키를 많이 마셔본 사람이라도, 표현력이 부족하면 어떤 맛인지 설명할 수 없다.

위스키, 많이 마신 게 독일 수도

언제부턴가 위스키가 시큰둥해졌다. 위스키를 마시기 전부터 맛에 선입견을 가지기 때문이다. 증류소, 숙성 연수, 오크통, 알코올 도수 등의 정보를 보면서 위스키가 어떤 맛을 낼지 떠올리면, 대부분 그 맛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처음 느껴보는 맛을 내는 위스키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위스키 라벨만 봐도 어떤 맛일지 상상이 된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라벨만 봐도 어떤 맛일지 상상이 된다. [사진 김대영]

이럴 땐 차라리 위스키를 전혀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런 고민 없이 바텐더에게 취향을 설명하고, 그에 맞는 위스키를 받았을 때의 쾌감. 처음 위스키를 마셨을 때 느꼈던, 후각과 미각을 완전히 일깨우는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가끔 bar에서 처음 마셨던 위스키를 주문한다. 10년 정도 숙성된 값싼 위스키. 한 잔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 마시면서, 맛과 향을 일일이 느껴보려고 애쓴다.

위스키를 공부하려면 다른 술부터 배워야

위스키는 원래 맛없는 술이었다. 척박한 스코틀랜드에서 자라던 보리에서 가능한 많은 알코올을 뽑아내려고 고안해낸 게 위스키다. 처음엔 보드카처럼 투명한 스피릿 상태로 마셨지만, 오크통에 숙성하면서 다양한 향이 더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오크통은 다른 술로부터 오는데, 주로 쉐리 등 강화 와인 오크통이 위스키 숙성에 쓰였다. 최근에는 꼬냑, 럼, 데킬라, 소주 등 다양한 술을 만드는데 썼던 오크통이 위스키 숙성에 사용된다. 그래서 위스키를 더 이해하려면, 다른 술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한다.

갓 만든 위스키 스피릿. 어떤 오크통에 숙성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된다. [사진 김대영]

갓 만든 위스키 스피릿. 어떤 오크통에 숙성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된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는 기호식품이다. 위스키를 전혀 안 마시는 사람도 있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위스키를 정말 맛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나는 맛 없어도 어떤 이에게는 인생 위스키일 수 있다. 입맛대로 즐기면 될 일이다. 그리고 알고 마셔도 좋고 모르고 마셔도 좋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재미가 있으니.

“어떻게 마시든 위스키는 맛있다”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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