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34)
교복을 벗고 자유로운 삶에 푹 빠져있던 스무 살.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다 도돌이표를 만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던 시절, 재수해서 한 살 많은 동기 누나를 좋아하게 됐다. 기회를 봐서 단둘이 만날 궁리만 하다가 틈새를 발견하고 재빠르게 던진 한마디.
“누나, 오늘 밤 한잔할래요?”
요즘이야 분위기 좋은 술집도 알고, bar라도 가면 되지만, 스무 살이 아는 술집이라곤 학교 앞 호프뿐. 단골 호프집에 가면 앉던 자리에만 앉게 되는 기현상 속에 익숙한 생맥주를 시키려던 찰나, 눈에 들어온 메뉴판 속 술이 잭콕이었다. 왠지 잭콕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녀가 나를 어리게만 보지 않게 될 거라 생각했다.
“전 요즘 잭콕만 마셔요. 여기 오면 이거 한 잔은 꼭 마셔야겠더라고요.”
웨스턴 바 유행과 함께 한 잭콕의 인기
요즘은 위스키 음료로 하이볼이 유행이지만, 2000년대는 잭콕의 시대였다. 이 시절에 술 좀 마셨다는 사람이라면, 잭콕에 대한 추억 하나쯤 없는 게 이상하다. 당시 ‘웨스턴 바’라는 게 도심에 우후죽순 생겼고, 여기에서 가장 싸면서 누구나 마시기 편한 술이 바로 잭콕이었다. 잭콕이 일반 호프집으로 건너가선 가장 비싼 술대접을 받기도 했다.
잭콕은 테네시 위스키 잭다니엘스(Jack Daniel’s)에 코카콜라(Coca-Cola)를 섞은 것이다. 잭다니엘스는 미국 테네시 주에서 생산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아메리칸 위스키다. ‘차콜멜로잉(Charcoal Mellowing)’이라고 하는 사탕나무단풍 숯에 위스키 스피릿을 여과시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유독한 푸젤유 성분이 제거되고, 독특한 달콤한 향과 부드러움이 더해진다. 바비큐를 즐기는 미국인들에게 잭다니엘스는 썩 어울리는 술이었다. 마찬가지로 고기와 어울리던 콜라를 곁들이다, 잭다니엘스와 섞으면서 잭콕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한국에선 잭콕을 잭콕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면, 한국에선 잭콕을 잭콕이라 부를 수 없다. 미국에선 코카콜라사와 협업을 통해 ‘잭다니엘스’에 ‘코크’가 붙는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선 ‘잭콕’이라는 단어 라이선스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브랜드가 ‘잭 다니엘스 앤 콜라(Jack Daniel’s & Cola)’. 줄여서 ‘잭콜’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잭콕’이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단어보다는 입에 덜 붙는 느낌이다.
콜라도 진화한다, 코카콜라 ‘시그니쳐 믹서’
잭콕의 일부로 달콤한 맛을 내는 데 불과했던 콜라. 하지만 콜라도 한층 진화했다. 영국 코카콜라는 지난 6월, ‘시그니쳐 믹서(Signature Mixers)’를 발매했다. 세계 유수의 바텐더들과 협력해 만든 ‘스모키(smoky)’, ‘스파이시(spicy)’, ‘허벌(herbal)’, ‘우디(woody)’ 등 네 가지 맛 믹서다. 이 믹서들은 콜라 맛과 함께 각각의 맛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스키, 럼, 데킬라 등에 섞었을 때, 기존 콜라보다 훨씬 풍부한 맛과 향을 낸다고 한다.
책장 한쪽에는 늘 잭다니엘스가 있고, 대형마트에 가면 콜라를 한 박스씩 사오곤 한다. 언제든지 잭콕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준비해놓는 셈이다. 이제 누군가에게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잭콕을 마시진 않는다. 하지만 달콤한 잭콕을 마시다 보면, 스무 살의 달달하던 사랑이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