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상호주의로-재개 앞둔 남북대화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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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은 지난 3월말이래 중단되어온 각종 남북 당국자간 대화를 다시 열자는 제의를 보내오고 있다.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 제의에 이어 남북국회회담,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회담, 남북체육회담 등을 열자고 제의해 왔고 이어 북한은 또 한국 적십자 총재 앞으로 전화를 통해 북한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전민련에 보내는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북한은 이로써 서경원 의원·문익환 목사·임수경양 등의 입북 소용돌이를 겪고 난 다음, 다시 다 채널 접촉을 통한 가을 「통일공세」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측의 이와 같은 제의에 대해 정부가 확고한 입장과 면밀한 청사진을 가지고 대응하기를 우선 당부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정부가 7·7선언과 노 대통령의 유엔연설, 그리고 연초에 있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으로 이어진 일련의 행동이 원래 의도와는 달리 거의 환상에 가까운 낙관주의의 오류였음이 드러났음을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후에 밝혀진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과 문익환 목사의 방북, 그리고 뒤이은 임수경양과 문규현 신부 입북 등의 사태가 암시하고 있는 북의 대남 전략이 6공 초기 우리 정부가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남북관계에 대한 낙관론과는 양립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가을에 펼치려하는 대남 접촉은 우리 정부가 그동안 보인 세련되지 못한 접근에 대한 현실적 검증과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 바탕 위에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것임을 당부한다.
우리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의 모든 남북관계가 7·7선언의 관용 테두리 안에서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된다는 점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통일 전략과 자신들의 이념에 동조하는 남한내부의 일부세력을 선별적으로 유인해 가려는 전략은 상호주의의 바탕이 되는 기초적 상호신뢰의 정신을 위배하는 행위임을 북한측에 분명히 납득시켜야 된다고 본다.
말로는 서로의 체제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면서 행동으로는 전혀 다른 짓을 하는 한 통일은 고사하고 서로간의 대화마저 진전될 수 없음을 북측에 분명히 인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남북 관계의 상호주의란 북한이 그런 인식을 말로만 확인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행동으로 분명한 성실성을 보일 때 우리측도 그 정도에 상응하는 응답을 보내야 되는 것이다.
예컨대 북의 각종 접촉제의가 남한사회의 통일 논의를 분열시키려는 또 다른 시도로 이용하려 들것에 대해 정부는 면밀한 대응책을 갖고 나가야 될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새로 마련된 통일 방안의 원칙들, 특히 북한사회 내부의 인권 및 민주화와 개방체제를 일관되게 요구해야 될 것이다.
이는 오랜 분단상태로 인해 두 사회 안에 쌓여온 체제 내적 부작용을 서로 같은 수준으로 제거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중요한 요건인 동질성회복을 기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우리는 또 정부에 대해 남북접촉의 초기단계에 교류의 창구를 정부로 일원화한다는 원칙은 이해하지만 대북 협상의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 각층의 여러 견해를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통일 문제에 대한 내부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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