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구감소에 교원 수 조절"… 교원단체 "교사 더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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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과 대응방향을 바탕으로 한 범정부 인구정책 TF 대책 등을 논의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과 대응방향을 바탕으로 한 범정부 인구정책 TF 대책 등을 논의했다. [뉴스1]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교원수급 체계를 개선하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구구조 대응방안'에 대해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교원단체들은 이를 학생 수가 줄어든만큼 교원 규모도 축소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교원 수급 문제를 단순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교원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기재부 '인구구조 대응방안' 발표 #"학령인구 감소 맞춰 교원 수급 조절" 언급 #교사들 "교육은 문제, 교사 오히려 늘려야"

이날 교원단체가 학령인구 감소에도 교사 증원을 주장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2025년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다. 고교생도 대학생처럼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과목을 골라 듣고 누적 학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현재는 한명의 교사가 같은 과목을 여러 반을 돌며 수업하지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한명의 교사가 2~3개 과목을 개설해 가르치게 된다"면서 "질 높은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의 수업 시수가 줄고 연구 시간이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하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은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인문계 고교에서도 IT나 제빵, 자동차 정비 등 진로·적성 수업 개설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질 텐데, 교원 확보가 쉽지 않다"며 "교원 숫자 감축보다 다양한 교원 확보에 더 신경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통계의 함정'을 들었다. 김영식 대표는 "최근 교원 정원이 다소 늘었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영양·보건·사서교사 등 비교과 교사 숫자가 늘어난 것"이라면서 "정작 수업 부담이 크고 담임까지 떠맡아야 하는 교과 교사들의 업무는 가중돼왔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농산어촌 등 벽·오지, 수도권 지역에는 여전히 과밀학급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통계상 전체 교원 숫자만 놓고 '교원 수 감축'을 결정하면 현장에선 엇박자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학교 책무성 강화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학생 숫자가 줄었다는 것은 단 한명의 학생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한 교실에서 저마다 학습 수준과 능력이 다른만큼 각 아이에게 맞는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문제까지 면밀하게 보살피는 체계로 학교 교육이 바뀌어가야 한다"면서 "이런 학습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교원수급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발언과 교원단체의 반응에 대해 교육부는 "인구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는 방향성 차원에서 홍 부총리 발언에 공감한다"면서도 "교원 규모 감축은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상신 교육부 대변인은 "교육은 양의 문제가 아니고, 질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 "인구 감소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올해 안에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학령인구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학령인구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 6월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평가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교총, 대교협, 전문대교협과 함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교육협의회' 구성에 합의했고 조만간 협의체 발족을 앞두고 있다. 협의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교육 공간의 혁신, 미래형 교실 환경, 대학 재정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학령인구 감소 대책을 도출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도 기재부의 접근 방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재부는 '학생 수가 줄어드니 교육 재정을 줄여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고, 교원 감축도 이같은 맥락에서 논의하는 걸로 보인다"면서 "고교 학점제 도입, 공간 혁신 등 학교의 구조적 변화를 논의하는 시점에서 교원 감축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 송 교수는 "한국의 교사 1인당 학생수는 이제 겨우 OECD 평균에 근접한 수준으로, OECD 상위권 국가의 교육지표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친다"며 "아직은 교육 재정을 늘려나가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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