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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본 유출 부추기는 '세금폭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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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의 맨해튼 바로 건너편에 있는 뉴저지 주 웨스트뉴욕에서 분양 중인 총 344가구의 아파트 '허드슨클럽'의 매입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보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와 관련된 자본 유출은 부분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가진 자들을 향해 쏘아 올린 세금폭탄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한 채에 40만~160만 달러에 이르는데도 이를 매입한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현금으로 샀다고 한다. 가진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야 비난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한국의 부자들이 미국에서 이처럼 값비싼 아파트를 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첫째, 국제수지 흑자로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상승하면서 자본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이 투자 안전지역인 데다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은 1999 ~ 2011년 외환 자유화를 추진 중이어서 2006년부터 해외 부동산 투자가 증가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외환 자유화는 3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지금은 3단계의 중간 시점이다. 이 조치에 따르면 2006 ~ 2008년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가 자유화되고, 2009~2011년에는 현행 '외국환 거래법'이 폐지돼 외환거래 규제가 사실상 없어진다. 2011년 이후에는 국내 자본의 엑소더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셋째, 노무현 정부가 가진 자들을 향해 쏘아올린 세금폭탄이 자본 유출을 부추겼을 것이다. 이 정부는 '소득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진 자들을 향해 엄청난 세금폭탄을 쏟아냈다. 종부세 하나만 봐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주택과 토지는 실거래가격으로 과세되고, 주택의 과표는 공시가격 9억원에서 6억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양도세만 해도 주택은 2007년 이후 세율이 50%로, 토지의 경우 비사업용 나대지와 부재지주 소유 농지 등은 60%로 인상된다. 종부세의 독소조항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해 한국인들이 미국의 고급 아파트를 무더기로 매입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세금폭격이 앞으로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조세부담이 지나치면 조세 셸터(tax shelter:높은 조세부담에서 탈출하기 위해 조세부담이 낮은 나라로 사업이나 시설을 옮기는 것)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글로벌 시대가 아닌가.

글로벌 시대에 국내 자본이 해외로, 해외 자본이 국내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선진국들은 지금 외자 유치를 위해 개인소득세.법인세 등을 놓고 조세 인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외자 유치를 위해 러시아 등 9개 옛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인정되는 단일세(單一稅)까지도 도입했다. 수도권 공장 신.증축 규제에 묶인 삼성전자는 15년간 법인세 면제 혜택에 끌려 싱가포르에 공장을 세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로 조세 인상을 추진해 왔다. 이 결과 조세 셸터가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마치 70~80년대의 아르헨티나처럼.

아르헨티나는 오랫동안 경제 불안을 극복하지 못한 나라다. 아르헨티나는 71~2003년 무려 13번이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 결과 1인당 소득은 '널뛰기형'으로 기복이 심하다. 이 과정에서 자본 유출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도 자본 유출을 막지 않으면 아르헨티나처럼 저성장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시대에 조세 셸터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다.

박동운 단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