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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끌다 뒤얽힌 5공 청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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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기국회를 앞두고 다시 5공 청산의 파고가 거칠어지고 있다.
평민당 측이 5공 청산 서명운동 등 가 투 가능성을 선언하고 있고 김영삼 민주당 총재도 4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는 등 공세 쪽으로 발을 맞춰 5공 청산 조기 매듭의 가 압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여기에 민정당이 공안정국의 여세를 몰아 강성포진으로 새 당직체제를 짜고 있어 5공 청산을 놓고 한판 대결이 벌어질지, 새로운 수습방안이 찾아질지 그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공안정국을 거치면서 대화 분위기가 크게 악화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진회담에서 한창이 문제를 논의할 때와 비교해 보면 각자의 입장은 더욱 경화되고 상당부분 탄력성을 잃고 있다.
5공 청산 문제엔 각자의 정치적 처지가 얽혀 있어 어느 한쪽의 일방적 후퇴를 기대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내년 초까지 완결>
민정당은 두 전직 대통령의 증언을 한번으로 끝내고 정호용 의원은 국회의 위증 고발형식으로 처리하겠다는 지난번 중진회담 때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선 야당 동의에 상관 않고 5공·광주·악법 개폐 특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이를 해체, 노 대통령의 취임 두 돌인 내년 2월 까진 청산문제를 완결 짓는다는 일정을 짜 놓고 있다.
지방자치제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5공 문제를 완전히 뛰어 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호용 의원의 공직사퇴라는 고리에 묶여 민정당 의중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특히 평민당 측이 서경원 사건으로 크게 훼손된 이미지와 정치력의 복원을 위해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민당은 내년에 지자제와 중간평가를 연계시켜 총공세를 취할 생각인 듯 하다.
김대중 총재는 이미 정기국회 중 5공 청산 대 국민 서명운동 전개 등 장외투쟁을 예고해 놓고 있다.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입장도 강경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영등포 선거 참패로 무너져 버린 자신의 입지를 여기서 다시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핵심 인사의 국회 고발 쪽에 관심을 두는 듯 한 인상을 준 적도 있었으나 정 의원 공직사퇴를 정식 요구하는 등 5공 청산을 절대절명의 과제로 삼아 연내 해결이 없으면 「중대 결단」이 있을 것임을 시사, 야권의 장외 공동전선 형성을 경고하고 있다. 평민당 쪽과 5공 문제로 선명성을 다투겠다는 속셈이다.
민정당 입장에 동조해 오던 공화당도 민정­공화 합작설 이후 일단 한발을 빼고 원론적인 입장에서 야당 공조에 치중하고 있다.
정 의원의 공직 사퇴는 현재로선 타협점이 난 망한 상태다. 한 때 정 웅 의원과 연계사퇴 방안도 있었으나 정 의원이 김대중 총재 책임론을 들고 나와 사정은 더욱 어렵게 꼬이고 있다 .여권 내에서도 그의 처신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군부동태 등 외부상황 때문에 감히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전직 대통령의 증언 성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공화 원론만 고수〉
핵심 인사문제와 맞물려 일괄타결 형식으로 추진되면 결론이 나기 어려운 것이다.
또 전씨 증언 문제도 백담사 측과 여권의 미묘한 관계로 문제의 마무리 아닌 증폭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남아 있어 간단치가 않은 상황이다.
민정당은 일단 4당 합의 종결을 시도할 방침이나 일정수준의 명분만 얻으면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을 시도하고 공화당을 끌어들여 국회 표결 방식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관련 보고서를 내고 일방 종결선언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당내에 협상 돌파 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이춘구 총장­이한동 총무 라인이 정씨 문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이 총장의 비 TK 출신 등 정씨와의 관계, 노 대통령 집권 2기의 순항을 위한 정치 작법을 위해 상당한 임무와 역할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다.
정씨 등 핵심 인사처리·전직 대통령 증언과 함께 5공 청산의 과제인 안기부 법, 국가보안법 등 악법개폐 문제도 공안정국의 여파로 환경이 악화돼 있다.
민정당은 국가보안법상의 처벌 대상을 결과 범에서 목적 범으로 완화하고 반국가 단체의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거두어 버리고 현행법을 유지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공화당은 여기에 맞장구친지 오래여서 민정-공화 대 평민-민주와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야당 측은 현행법을 없애고 필요 조항을 형법에 넣자는 것인데 서 의원 사건 등으로 일단 불고지죄 삭제 등 독소조항 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경 대치 가능성〉
안기부 법은 야당 측이 국내의 대공정보 관장까지 일보 후퇴하고 간첩죄에 한해 수사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서 의원 사건으로 인한 안기부와 평민당 측과의 관계 악화로 삐거덕 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4당은 사무총장·총무·정책위의장 회담 등 외형상 다양한 창구를 열어 놓고 있고 곧 중진 회담의 재 가동도 가능할 전망이나 공안정국을 통해 재미를 보았다고 판단하는 민정당과 야성을 경쟁적으로 드러낼 야권의 전략이 맞붙어 극적인 전환이 없는 한 어지간해선 타협적으로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때문에 5공 청산 문제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해결 못하고 내년으로 넘어가면 지방의회 선거 등과 맞물려 강경 대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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