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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선희, 美에 급 "9월 만나자"…비건·폼페이오 협공 통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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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11일 오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에서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만나 실무회담을 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11일 오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에서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만나 실무회담을 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9월 하순 미국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9일 밝히면서 교착 상태였던 북ㆍ미 실무협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9일 밤늦게 담화를 내고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ㆍ미 실무 대화를 북한의 대미 협상 수장인 최 제1부상이 공식 제의한 셈이다.

최 제1부상은 8월31일엔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며 “(미국이) 조미(북ㆍ미) 실무협상 개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담화를 발표했었다. 약 10일만에 미국과의 실무협상 재개에 부정적이었던 최 제1부상이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최선희는 북한의 대미 협상을 총괄하고 있다. 최 제1부상의 9일 심야 담화 발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양측간의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를 이어왔다. 이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을 도맡은 인물이 최선희다. 최 제1부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정면으로 겨냥해 “미국은 원치 않는 결과를 볼 수도 있을 것”(4월30일)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를 심히 모독한 것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실언”(8월31일)이라는 비난을 쏟아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깜짝 회동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깜짝 회동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최선희 부상의 9일 담화는 김정은 위원장의 최후통첩 성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후인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2일차 시정연설에서 “(3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 볼 용의가 있다”면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앞서 1월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만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걸린 내년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성과를 내고 싶다면 올해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는 모양새다.

9일 담화가 급작스레 나온 배경엔 미국 측의 강경한 입장 표명도 영향을 줬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협상 특별대표는 5일(현지시간) 미시건대 특강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공개 제기했다.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로 한국의 핵무장론 카드까지 들고나온 것이다.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비건 대표의 직속 상관인 폼페이오 장관도 가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현지시간) ABC 방송 인터뷰에서 “몇일 또는 몇주 안에 (북한과)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길 기대한다”며 “김 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거나 미사일 실험을 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실망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향한 직격 메시지다. 북한이 이에 호응해 연내 3차 북ㆍ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가자는 응답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은 핵ㆍ미사일 도발의 재개로 해석된다. 지난해 6월 1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내가 더 큰 핵무기 (발사) 버튼을 갖고 있다”며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을 이어갔었다. 북ㆍ미가 이달 말 실무협상을 재개해 연내 3차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그 결과에 따라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는 요동칠 수 있다.

최선희 제1부상이 9일 담화에서 “나는 미국 측이 (북ㆍ미) 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 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 믿고 싶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최 제1부상은 같은 담화에서 “만일 미국 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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