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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홍콩장관 “송환법 철회”…200만 시위에 결국 손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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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홍콩 시민들이 4일 송환법을 철회하겠다는 람 행정장관의 녹화 연설 을 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4일 송환법을 철회하겠다는 람 행정장관의 녹화 연설 을 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을 14주째 거리로 불러낸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이 4일 공식 철회됐다.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이날 오후 정부 관계자들과 회동하고 송환법 공식 철회를 결정하면서다.

체포 시위대 석방 등은 언급 없어 #조슈아 웡 “부족하고 늦었다” 비판 #홍콩 사태 종지부 찍을지 불투명 #중국 외교부는 구체적 언급 피해

람 장관은 이날 오후 4시께(현지시간) 자신의 공관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회동했다. 회동을 마친 람 장관은 오후 6시 미리 녹화된 약 8분짜리 영상을 공개하며 “정부는 대중의 우려를 완전히 진정시키기 위해 송환법을 공식적으로 철회한다”며 “입법회의가 재개되면 규칙에 따라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상에서 람 장관은 “폭력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며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폭력을 멈추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정부에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자 석방 ▶경찰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그중에서도 송환법의 공식 철회는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이에 람 장관은 “송환법은 죽었다” “입법을 추진하지 않겠다” 등 수차례 입장을 밝혀왔지만,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날 람 장관의 송환법 철회 발표가 홍콩을 초유의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던 사태를 완화할지 지구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송환법에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대만 등의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홍콩의 반중국 인사, 인권 운동가 등 민주 인사들을 중국 본토로 넘기는 데 악용될 것으로 우려하며 시위에 나섰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6월 초부터 법안 저지를 위한 본격적인 시위에 돌입했고, 한때 2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거리를 점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시위를 주도한 민주인사들이 일제히 체포되는 등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격화되던 상황이었다.

홍콩 증시는 이날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장기간 이어진 시위가 누그러들면 정치적 위기가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람 장관의 송환법 공식 철회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나온 직후 홍콩 항셍지수는 장중 한때 4.4% 이상 급등했다가 전날보다 3.9% 오른 2만6523포인트로 마감했다.

홍콩 당국의 송환법 완전 철회 결정이 홍콩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 중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네개는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콩 ‘우산 혁명’의 주역이자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한 조슈아 웡(黃之鋒)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비서장은 이날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직전 자신의 트위터에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다”며 “람 장관의 반응은 7명이 죽고 1200여 명이 체포된 이후 나온 것인데, 체포된 이들은 경찰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정부의 이날 결정은 중국 정부와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어제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대변인이 이미 최근 홍콩 정세와 중국의 입장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며 중앙 정부의 지시나 동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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