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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엔사 평시에도 한국군 작전 지시 가능"

중앙일보

입력

미국은 유엔군사령부의 몸집과 힘을 키운 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주도권을 쥐려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유엔군사령부 의장대.  [사진 미 육군]

미국은 유엔군사령부의 몸집과 힘을 키운 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주도권을 쥐려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유엔군사령부 의장대. [사진 미 육군]

미국이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북한이 국지 도발을 벌일 경우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에 작전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평시 작전권은 1994년 한국군으로 전환됐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한국으로 전환되더라도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개입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방위비 협상(SMA)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에 이어 평시 작전권 행사 여부가 한·미간 갈등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화이트국가 제외 조치에 지난달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고, 미국은 이에 대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하용하며 한·미·일 안보협력 균열로 여기고 있다.

북한의 국지 도발 때 정전협정 관리 차원에서 #평시 작전권은 1994년 한국군으로 이미 전환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주도권 계속 쥐려는 듯

3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11~20일 한ㆍ미 군당국이 실시한 기본운용능력(IOC) 검증 연습 중 평시 위기 사태가 발생하면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집중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에서 미군은 유엔사가 정전협정 준수와 한반도의 안정적 상황관리인 기본 역할을 다하려면 유엔군사령관이 평시 유엔사 교전수칙을 적용해 한국군에 작전에 관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유엔사 교전수칙은 확전 가능성과 위기관리 고조를 고려해 동종, 동량의 개념으로 대응한다는 비례성 원칙으로 돼 있다.

반면, 한국군은 1994년 평시 작전권이 한국에 이관된 만큼 유엔사가 개입할 수는 근거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유엔군사령관의 지시는 전작권을 행사하는 한국군에 대한 월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군 교전수칙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적 도발 수준에 따라 그 3∼4배로 응징할 수 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이후 정해진 원칙이다. 이에 따라 2014년 3월 31일 북한군이 북방한계선(NLL) 남쪽 해상으로 포탄 100발을 쏘자 한국군은 3배인 300발로 반격했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국제법센터장은 “미국은 유엔사의 권한을 크게 보는 반면, 한국은 적게(전시에 한정해) 해석하고 있다”며 “법적으로 양쪽 다 일리가 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IOC는 한국군이 전작권 전환 능력을 갖췄는지 점검하는 연합훈련이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군 대장인 최병혁 한ㆍ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사령관을, 미군 대장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군사령관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아 진행했다. 그런데 전작권과 큰 상관이 없는 유엔군사령관의 권한에 대한 논의가 연합훈련에 들어간 것은 미군 측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의 권한에 대한 토의를 강력히 주문한 것으로 안다”며 “유엔군사령관 권한에 대한 양국의 견해 차이가 단순히 교전수칙에 관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국이 전작권을 한국군에 전환한 이후 한국군 대장이 지휘하는 연합군사령부를 유엔사로 대체할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관의 정전협정 유지와 관련한 역할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전시작전권을 한국군에 이관하더라도 미군의 입김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라는 얘기다.

실제 미국은 유엔사의 몸집을 키우는 동시에 역할을 확대하려는 중이다. 지난 1월 유엔사에 장교 20명을 파견해 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하기도 했다<중앙일보 7월 8일자 14면>. 또 독일과 협의해 유엔사에 독일군 연락 장교를 받으려다 한국 측 반대로 무산됐다.

유엔사는 78년 연합사가 만들어진 뒤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역할만을 담당하면서 조직과 권한이 축소됐다. 그런데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재활성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국이 정치적으로 더 상위인 유엔사를 통해 연합사를 주도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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