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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정현, 그 뒤를 받쳐준 축구 국대 친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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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정현(왼쪽)이 1일 US오픈 3회전 직후 라파엘 나달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USA 투데이=연합뉴스]

정현(왼쪽)이 1일 US오픈 3회전 직후 라파엘 나달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USA 투데이=연합뉴스]

한국 테니스의 자존심 정현(23·한국체대·170위)이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라파엘 나달(33·스페인·2위)을 끝내 넘지 못했다. 그래도 호주오픈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프지 않고 메이저 대회를 마쳤다.

부상 없이 대회 마친 테니스 간판 #US오픈 3회전서 나달에 져 탈락 #허리 부상 등 5개월 넘게 재활만 #또래 선수들과 교류 심리적 안정 #연내 세계 100위 이내 진입 목표

정현은 1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32강전에서 나달을 맞아 1시간 59분 만에 세트 스코어 0-3(3-6, 4-6, 2-6)으로 졌다. 그래도 3회전 진출에 따른 상금 16만3000달러(약 1억9600만원)를 받았고, 대회 직후 발표될 세계 랭킹도 140위 정도까지 오르게 됐다.

정현과 메이저 18승의 나달의 격차는 예상대로 컸다. 1세트 게임 스코어 2-3에서 서브 게임을 지키지 못한 정현은 그대로 세트를 내줬다. 2세트에서도 게임 스코어 2-2에서 서브 게임을 내준 뒤 끌려갔고, 3세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현은 서브에이스에서 5-4로 앞섰다. 하지만 실책이 37개나 돼 26개의 나달과 큰 차이를 보였다. 나달과 맞대결 전적도 3전 전패가 됐다. 정현은 “톱랭커와 할 때는 뭐든 쉽지 않다. 상대의 단점을 알고 있어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며 “특히 오늘은 나달이 예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와 다소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정현은 쇼트트랙 최민정, 축구 김민재와 어울리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사진 정현 SNS]

정현은 쇼트트랙 최민정, 축구 김민재와 어울리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사진 정현 SNS]

정현은 몸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않고 대회를 마친 점을 크게 기뻐했다. 정현은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4강에 오르며 세계 테니스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발바닥·발목·허리 등의 부상으로 이후 제대로 뛰지 못했다. 대회를 신청했다가 기권하는 일이 잦아지자 ‘유리 몸’이라는 조소도 잇따랐다. 올 시즌도 허리 부상 탓에 2월부터 7월까지 5개월 이상 재활에 매달렸다.

정현은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부상 없이 경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공백기 이후 출전한 대회치고는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달도 정현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그는 “부상을 이겨낸다는 건 매우 힘든 과정”이라며 “건강을 유지한다면, 정현은 어떤 상대와 만나도 준수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 이번 대회 선전이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의 성공적 코트 복귀에 친분이 있는 다른 종목 선수들도 반가움을 전했다. 정현이 2회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축구 국가대표들이 그의 소셜미디어에 응원 글을 남겼다. 백승호(22·다름슈타트)는 “멋지다. 브로(형제)”라고, 김민재(23·베이징 궈안)는 “현아 이번에는 꼭 이기자. 사랑해”라고 적었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21·성남시청)은 엄지 모양 이모티콘으로 응원했다.

정현은 축구 김민재·황희찬·백승호 등 또래 친구와 어울리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사진 김민재 SNS]

정현은 축구 김민재·황희찬·백승호 등 또래 친구와 어울리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사진 김민재 SNS]

6세에 테니스를 시작한 정현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같은 종목 선수인 형 정홍(26·국군체육부대)이었다.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개인 훈련에 몰두하느라 또래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다. 개인 종목 특성상 다른 선수들과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특히 18세에 프로에 데뷔하면서 1년의 절반은 외국 투어대회에 출전하면서 외로움이 컸다. 지난해 호주오픈 4강 진출 이후, 주위의 기대는 커졌지만, 부상 등으로 몸이 따라주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 다른 종목 친구들을 만났다. 같은 수원 출신인 백승호와 먼저 친해졌고, 백승호를 통해 김민재, 황희찬(23·잘츠부르크) 등을 알게됐다. 최민정은 심리상담사인 박성희 스포츠 심리학 박사가 소개해줬다. 또래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고 어울리면서 부담감을 덜고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정현도 축구 대표팀 경기 때는 경기장을 찾아 친구들을 응원했다. 정현의 어머니 김영미(50)씨는 “다른 종목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새로운 트레이닝 방법도 배우고 스트레스도 해소했다”고 전했다.

긴 부상의 터널을 지나 US오픈을 통해 다시 기지개를 켠 정현은 이제 본격적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당분간은 아시아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부상 없이 현재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랭킹 포인트를 쌓으면 연내에 100위 안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

정현은 “경기를 더 길게 끌고 갈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서브도 전체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게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뉴욕=진슬기 통신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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