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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출신 영국 학자 “방탄소년단, 전통적 성 역할 깨는 대안적 남성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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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콜레트 발메인

콜레트 발메인

공부하는 ‘덕후’들이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6~28일 서울 삼성동 슈피겐홀에서 열리는 ‘BTS 인사이트 포럼’은 그 답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사흘간 무대에 오르는 연사 30여명의 면면도 다양하다. 이탈리아에서 온 20대 유튜버 안젤라부터 70대인 진영선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명예교수까지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 ‘아미’라는 것을 제외하면 공통분모가 없는 독특한 조합이다. 다루는 분야 역시 인문학·미디어·마케팅·디자인 등 광범위하다.

킹스턴 대학 콜레트 발메인 교수 #‘BTS 인사이트 포럼’ 강연차 방한 #내년 1월 영국서 콘퍼런스 주최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연사는 영국 킹스턴대 영화·미디어학부의 콜레트 발메인(57) 교수. 2008년 『일본 호러 영화 입문서』를 시작으로  『월드 시네마 디렉터리: 한국 편』(2013),  『한국 스크린 컬처』(2016) 등을 쓴 한국영화 전문가이자 내년 1월 4~5일 영국에서 열리는 ‘BTS 콘퍼런스’를 준비 중인 학자다.

“10년 넘게 한국 대중문화를 연구했는데 이제야 처음 와보게 됐다”는 그는 BTS를 젠더 문제의 관점에서 주목했다. “BTS의 남성성은 K팝 내에서도 매우 독특하게 발현되고 있다. ‘마초적 남성성’이 아닌 ‘사내아이 감수성’에 가깝다”며 “이는 ‘대안적 남성성’을 통해 긍정적 롤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지난 5월31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에서 상영된 방탄소년단의 팬 메시지 영상. [사진 트위터]

지난 5월31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에서 상영된 방탄소년단의 팬 메시지 영상. [사진 트위터]

“문화권에 따라 전통적 성 역할을 강요받기 마련인데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거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선입견을 깨는 거죠. ‘미투 운동’ 이후 유해한 남성성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시의적절합니다.”

일부에서는 예쁘장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무장한 K팝 보이그룹을 ‘게이팝’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멤버들 사이의 거리낌 없는 스킨십도 공격 대상이 됐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겨나는 오해”이자 “대중문화에서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음악은 항상 앞장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역할을 해 왔잖아요.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젊은 청중들과 만나 소통하다 보니 더 자유롭고 유연하죠.”

그리니치대에서 이탈리아 호러 영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2003) 등을 보며 한국식 스릴러에 빠져들었다. 2016년 10월 미디어 기호학 수업을 위해 유튜브에서 자료를 찾던 중 ‘보이 미츠 이블(Boy Meets Evil)’ ‘피 땀 눈물’ 등 뮤직비디오를 보고 BTS에 ‘입덕’했다.

그는 “장르 간 경계가 허무는 크로스오버가 한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런던 한국영화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이렇게 빨리 커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일본은 애니메이션·게임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확산돼 가고 있었지만 한국은 영화밖에 없었거든요.”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늘어나고, 영화와 드라마 간 협업이 활발해지면서 한류 소비층의 외연도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이제 기존 한국 영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넷플릭스의 ‘킹덤’을 보고, 한국 음악을 들어본 적 없던 사람들도 BTS를 이야기해요.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원어로 콘텐트를 즐기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지금의 현상이 어떻게 발전돼 나갈지 한국 문화의 오랜 팬이자 학자로서 기대됩니다.”

글=민경원 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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