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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조국 패밀리 스캔들'과 그 뒤에 숨은 공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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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보다 1년 앞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은 일본 영화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일본판 제목은 ‘좀도둑 가족')이다. 가족 해체 시대에 가족을 소재로 만든 한국과 일본 영화가 1년 시차를 두고 칸에서 대상을 받은 사실이 공교롭다. 영화 '기생충'은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가족과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을 극적으로 대비했다. 반면 영화 '어느 가족'은 혈연과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모여 살게 된 비정상적인 가족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반추하게 해준다.
 막노동 판에서 다리를 다쳐도 산재 처리를 못 받는 남자, 생계를 위해 유사 성매매에 뛰어든 20대 여성, 가정 폭력을 당한 아이가 함께 모여 산다. 이들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고, 노인의 연금에 빌붙어 연명한다. 급기야 숨진 할머니를 장례비가 없어 집 마당에 암매장한다. 영화를 보면서 보호장치 없이 제도권 밖에 내던져진 이들의 행동을 법과 도덕의 잣대로 쉽게 재단하기 어려웠고 동정심마저 들게 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난한 가족.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난한 가족.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사진 네이버 영화]

비정상 가족을 그린 일본 영화 '어느 가족'.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사진 티캐스트]

비정상 가족을 그린 일본 영화 '어느 가족'.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사진 티캐스트]

 작품성과 달리 흥행 기록은 '기생충'(1008만명)이 '어느 가족'(17만명)을 압도했지만, 이번엔 5000만 국민의 눈과 귀를 일시에 사로잡은 '또 하나의 가족' 즉, '조국 패밀리'가 떴다. 이들이 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고 각종 편법을 동원해 비정상적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의혹이 하나씩 폭로되고 있다. 사모펀드 편법 증여 의혹에 이어 수상한 딸 장학금과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부정 의혹까지 제기됐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으로 촉발된 '최순실 국정 농단'보다 더하다는 말도 나온다. 위선의 가면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동정은커녕 실망·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부실 검증한 청와대, 오기 강행 #많은 대학들 봐주기 가담했나 #윤석열 검찰, 제대로 수사할까 #사퇴든 지명 철회든 결단해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을 둘러싼 '조국 패밀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칫 대형 게이트로 비화할 기세다. 상식의 눈으로 봐도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후보자는 제기된 의혹을 정말 몰랐고 양심에 일말의 가책도 없이 '셀프 검증'을 통과했을까. 돈·권력·명예를 모두 가지려다 탈이 난 것 아닌가. 수신(修身)도 제가(齊家)도 못한 사람이 치국(治國)을 논하려 했다면 후흑(厚黑)의 극치다. 청와대 비서관실에 걸린 '춘풍추상(春風秋霜·남에겐 봄바람처럼 나에겐 추상처럼)' 액자를 몇번이나 봤을까.

청와대 여민관에는 고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春風秋霜)' 글이 걸려 있다.(사진 위) [연합뉴스]

청와대 여민관에는 고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春風秋霜)' 글이 걸려 있다.(사진 위) [연합뉴스]

 둘째, 청와대는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조 후보자를 무리하게 내정한 것 아닌가.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경우 200개 항이 넘는 인사 검증 동의서를 받는다. 검증하고도 문제를 적발하지 못했다면 부실하고 무능한 것이다. 흠결을 뻔히 알고도 전관 예우하듯 후보 추천을 강행했다면 국민을 무시한 무책임한 행위다. 어떤 경우라도 권력의 오기이자 오만이다.
 셋째, 이런 조국이 민정수석 시절에 검증하고 대통령이 국회의 청문 보고서 채택 불발에도 임명을 강행한 16명의 고위 공직자들은 과연 멀쩡한 사람들일까. 조국의 낮은 검증 잣대가 정파적으로 편향된 부실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남발한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넷째, 윤석열 검찰 총장 체제에서 조국 패밀리를 둘러싼 의혹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윤 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권력 눈치 보지 않는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설령 혐의가 드러난다 해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체제에서 살아 있는 권력의 최측근 인사를 단죄할 수 있을까.
 다섯째, 들끓는 민심을 무시하고 대통령은 조국 임명을 끝내 강행할까. 그럴 경우 과연 '조국 카드'를 통해 무엇을 도모하려는 것일까. 단순히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 마무리 때문은 아닐 거다. 이참에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라는 노림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 '차기 대권 주자 스펙 만들기'라는 입방아는 또 무슨 소린가.

2017년 대선 선거 유세장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조국 서울대 교수. [뉴시스]

2017년 대선 선거 유세장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조국 서울대 교수. [뉴시스]

 조국 패밀리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 당사자들은 물론 그 뒤에 숨어 있는 다수의 공모자는 이런 의문들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 입시생과 학부모들을 분노케 한 단국대·고려대·부산대·서울대·공주대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법과 규정을 무시한 채 '권력자 조국'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정한 수사가 마땅하다.
 조 후보는 "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며 피하고 있는데 하루짜리 청문회로 의혹이 풀릴까. 부적격 논란에 휩싸인 사람 때문에 국가와 사회의 에너지를 계속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다. '작은 조국(曺國)' 지키기에 집착하다 자칫 '큰 조국(祖國)' 망칠까 걱정이다. 자진 사퇴든 임명 철회든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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