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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누가 '다이나믹 코리이'의 활력을 죽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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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대중 정부는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를 내세워 큰 성과를 거뒀다. 월드컵 축구 4강전이 열린 서울 상암 경기장 전광판에 2002년 6월 '신화창조 대한민국'이란 문구가 나붙었다.   [중앙포토]

김대중 정부는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를 내세워 큰 성과를 거뒀다. 월드컵 축구 4강전이 열린 서울 상암 경기장 전광판에 2002년 6월 '신화창조 대한민국'이란 문구가 나붙었다. [중앙포토]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김대중 정부는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를 대한민국 브랜드로 내걸었다. 신명 난 길거리 응원이 '4강 신화'로 이어지며 국가 이미지 개선에도 큰 성과를 거뒀다. 이 구호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로 대체됐지만, 국가의 역동성(Dynamism)과 사회·경제적 활력을 계속 살려 나가는 일은 누가 정권을 잡든 계속 추구하는 게 맞다.
 그런데 다이나믹 코리아 구호가 교체된 지 불과 2년여 만에 이 땅에서 활기가 사라지고 있다. 봄이 와서 자연계는 도처에 온갖 꽃이 피고 있지만,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냉기가 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말 그대로 '봄이 왔다지만 봄 같지 않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생기가 넘쳐야 당연한 계절인데 '풀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무리한 경제·노동 정책들이 한국 사회의 활력을 증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인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경남 창원과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기업인과 노동자, 공단 주변 상인과 자영업자에게서 확인한 비명은 생생한 증거들이다.

 소상공인들이 2018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 주52시간제가 한국 사회와 경제의 활력을 죽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소상공인들이 2018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 주52시간제가 한국 사회와 경제의 활력을 죽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급기야 소상공인들과 직장인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회장 김태훈 변호사)은 최저임금법 및 동법 시행령, 그리고 근로기준법이 헌법상 재산권, 직업의 자유, 계약의 자유, 기업활동의 자유, 신체의 자유,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고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헌법소원 실무를 맡은 정선미 변호사는 "소상공인과 직장인 등 13명이 현재까지 참여 의사를 밝혔다"면서 "청구인을 추가로 모집해 이르면 4월 중에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청구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7년간 운영하던 국숫집을 폐업한 김씨, 최저임금 인상으로 공장이 존폐 갈림길에 내몰렸다는 제조업체 사장 류씨 등의 사연을 보니 오죽 답답했으면 헌법소원까지 내려고 하나 싶어 안쓰럽다.
 우인식 변호사는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도입하면서 잔업이나 특근을 더 하고 싶어도 근로기준법 규제 때문에 일을 못 하니 월 소득이 급감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엔 법정 근로시간 미준수에 따른 노동착취를 호소했다면 요즘 근로자들은 '일을 더 하게 해달라'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이런 헌법소원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재난 주간 방송사인 KBS는 지난 4일 밤 강원도 산불이 급격히 번지는 와중에 재난 특보를 신속하게 방송하지 않고 정권 홍보 성격이 강한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연합뉴스]

재난 주간 방송사인 KBS는 지난 4일 밤 강원도 산불이 급격히 번지는 와중에 재난 특보를 신속하게 방송하지 않고 정권 홍보 성격이 강한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연합뉴스]

 주52시간제는 신속한 재난 대응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강원도 산불 사태 당시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는 정권 홍보성 방송에 치중한 데다 주 52시간제 도입까지 겹치다 보니 재난 방송을 부실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방청은 지난 4일 오후 9시 44분 가장 높은 화재 대응을 의미하는 '3단계'를 발령했다. 그런데도 KBS는 1시간이 지난 오후 10시 53분에야 특보를 시작해 불과 12분 만에 '오늘밤 김제동'을 내보냈다. KBS 공영노조는 "주민들이 혼란과 공포에 떠는 와중에 KBS는 편파 시비가 잦은 '오늘밤 김제동'을 내보냈다"며 "밤 11시에 '오늘밤 김제동'을 편성하면서 폐지한 ‘뉴스라인’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산불 재난 상황에) 더 신속하게 대응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승동 사장과 보도국 간부들은 그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재난 주관 방송사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정보제공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KBS의 부실한 재난 방송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재난 주관 방송사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정보제공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KBS의 부실한 재난 방송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연합뉴스]

 KBS 내부 인사는 "정권과 코드가 맞는 간부들이 정권 홍보 방송에 치중해왔고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내부 기강이 무너졌다. 이 와중에 야간 재난 방송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재난 주관 방송사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정보제공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KBS를 질책했다. 사실 KBS의 재난 방송 직무유기가 초래된 전후 맥락을 따져보면 KBS 내부 문제도 있겠지만, 공영 방송 시스템을 망가뜨린 정권의 책임도 크다. KBS를 질책하기 전에 자책을 먼저 해야 마땅한 이유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가 대한민국의 활력을 죽이는데도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일이든 생활이든 국민이 신명 나도록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주고 옆에서 도와주는 지혜로운 정부, 한민족의 '신명 DNA'를 되살려줄 정부가 지금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을 꺾고 4강 진출이 확정되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17년이 지난 지금 '풀죽은'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 활력을 되살려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다.[특별취재반 ]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을 꺾고 4강 진출이 확정되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17년이 지난 지금 '풀죽은'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 활력을 되살려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다.[특별취재반 ]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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