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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조국의 해운대 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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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한 빌라가 세간에 오르내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차명 소유 논란에 휩싸인 우성 빌라(사진)다. 1995년 완공됐다. 건축물 대장에 따르면 대지면적 1877.7㎡, 최고 5층 건물 세 동이 경사지에 지어졌다. 현재 총 15가구가 산다.

건물은 태어났을 때부터 화제였다. 당시로써 드물게 건축가가 설계한 연립주택이었다. 조성룡 건축가의 작품이다. 옛 정수장을 공원으로 재생시킨 ‘선유도 공원’, 국내 최초의 아파트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인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등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 건축사에 굵직한 사건을 기록한 건축가다.

그가 이 주택을 의뢰받았을 당시, 한국에는 아파트 붐이 일고 있었다. 90년대 초 1기 신도시가 건설됐고 동시에 획일적인 아파트 공간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공동주택에 공동체 정신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93년부터 99년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건축가들에게 의뢰해 분당 신도시에 단독주택과 저층 공동주택이 마을을 이루는 ‘분당 주택전람회 단지’를 계획하기도 했다.

16일 조국 어머니 박정숙씨가 사는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의 한 빌라. 송봉근 기자

16일 조국 어머니 박정숙씨가 사는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의 한 빌라. 송봉근 기자

그런 시절도 있었다. 해운대 빌라는 바다를 향해 ‘삐딱하게’ 서 있다. 주변 집이 바다 뷰를 위해 일자로 쭉 서서 장벽이 된 것과 다르다. 사선으로 세워 뒤를 열었다. 건축가는 저서 『건축과 풍화』에서 “언덕 위에, 우리나라 흔한 구릉지에 집을 지을 때 내 옆이나 뒤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를 시도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공동주택이지만, 옛 동네의 모습을 닮았다. 단지 내부의 골목길과 마당을 지나 가가호호 진입한다. 건축가는 “말이 공동주택이지,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주고받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아파트의 문제”라며 “이웃이 서로 만날 수 있게 길과 마당을 냈다”고 전했다.

이후 건물의 시공사인 우성건설이 부도가 나면서, 새로운 공동주택 실험은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공간은 남아서, 이처럼 불쑥 등장해 지난 시절 우리의 주거사를 들려준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