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정계 개편④|민정 "일 자민당 식이 좋은데…"|4당 틀 벗어나 아예 보수신당 구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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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이 생각하고 있는 정계개편은 일본 자민당식 보수연합이다.
4·26 총선 이후 여소야 대의 4당 구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당장의 현실적 필요가 더없이 절실할 뿐 아니라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좌경세력의 정치세력화에 대비해 미리 보수세력의 결집을 통한 부동의 안정세력을 구축해 두어야겠다는 장기적 목표도 배경에 깔려 있다.
이와 같은 보수대연합의 논의는 6공에 들어와 처음 구상된 것이 아니다.
5공 출범 때부터 줄기차게 보수연합의 필요성이 논의됐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여러 차례 검토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좌경확산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정당의 장기집권 방편으로 관심을 가졌었다.
지금 정부·민정당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안도 그 의도와 방법론이 다양하다.
물론 그 강도와 실천의지는 5공 때보다 훨씬 절박하고 공감대가 넓다. 위로는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민정당 당직자들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이해와 명분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이 문제를 현실적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러갈래 구상 중 하나는 민정-공화당의 「소련합」.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박준규 대표위원을 비롯한 당 주류조차 회의적이다.
민정-공화 합작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박대표는 그게 수월할지는 모르나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민정-공화가 합작하면 1백64석으로 과반수는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개헌선인 3분의 2(2백석)에는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평민·민주 양당을 결속시키도록 만들어 정국긴장만 더하고 명분상으로도 「유신연합」 또는 「보수야합」이란 비난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민정당이 내심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민주·공화 3당과의 연합이다. 지난 영등포을 구 재선거에서도 표로 확인됐듯 보수 중산층이 집중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면 같은 보수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3당도 연합, 단일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자칫하면 영남연합, 혹은 비호남 연합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데다 대권에 대한 집요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는 김영삼 총재가 걸림돌이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된 것이 평민당 보수세력까지 망라하는 보수세력의 전면규합. 이 「헤쳐 모여」식 방법은 가장 바람직하긴 하나 현실적으로는 엄청나게 어려운 방안이다.
민정당내에서는 진실로 정치안정을 가져오려면 민정·평민 제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지역당 체제 타파 등의 명분을 내걸고 있는 이 방안은 이종찬 총장 등이 주장하고 있으나 김대중 총재에 대한 혐오세력에 외면 당하고 있다.
정계개편 구상마다 각자의 이해가 엇갈려 있고 그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민정당이 진짜 의지를 가지고 정계개편을 실현하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정계개편을 뜬소리로 치부하는 의견이 있다. 민정당이 여소야대의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느라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는데 총론에는 누구나 수긍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실현성이 없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일부에선 아예 대야 분열용에 지나지 않으며 다음 총선까지 정국을 주도해 나가는 수단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들은 또 정계개편을 하자면 내각책임제 개헌이란 전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데 개헌의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하다는 점을 정계개편 불가능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민정당은 내각책임제 개현을 바탕으로 14대 총선전에 정계개편을 추진한다는 확고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정계 개편론자들은 이것이 노태우 대통령의 확실한 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고위인사는 『이제 대통령 중심제는 물 건너갔다』고 까지 단언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연말께 정계개편의 구상이 확정됐으며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야당측에 대한 의사타진, 막후접촉이 꾸준히 이뤄졌다고 한다.
박준규 대표위원·김윤환 총무·박철언 정무장관 등이 구상의 확정에 기여했으며 이의 실현을 위해 야당측과 접촉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대표의 경우는 지난봄 김종필 공화당 총재를 청구동 자택으로 방문한 바 있고 김총무는 광범하게 야당의원들을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박대표나 김총무 등은 번갈아 가며 정계개편과 개헌에 대한 얘기를 흘려왔다.
민정당 핵심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계개편 구상은 단순히 「민정당 중심」은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정-공화 소련합」 정도의 정계개편이 사실상 정계를 재편성한다는 의미가 없다면 정계개편을 어떻게든 실현시킬 수 있는 방향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요하다면 민정당의 틀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민정당이란 기존정당 체제가 고집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정계개편에 의해 새로운 모습의 보수신당이 출현할 수 있고 그 인적 구성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정계개편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 정계개편이나 연립·합당 등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5구 청산문제의 해결과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만 했다.
그러나 기존 4당 체제의 틀 자체를 벗어나 버린다면 그와 같은 조건들이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장애요인들이 걸리적 거리면 그것을 아예 개편대상에서 제외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혁명적 방식의 정계개편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논이 분분하다.
정변과 같은 외부 충격없이 기존· 4당 체제 안에서 그와 같은 이상론적인 개편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정계개편의 시도가 가시화되어 하나의 대세를 이루게 되면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민정당의 경우 노대통령의 결단이 커다란 추진력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과연 어느 시기에 어떤 계기로 정계개편의 흐름이 일어나 대세를 이뤄갈지 이 시점에서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계개편이 눈앞의 일로 진전될 때 가장 먼저 갈등이 나타날 곳은 바로 민정당 내부일 것 같다. 왜냐하면 성사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민정당이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바로 당내 이해대립으로 증폭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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