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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무섭고, 서핑은 짜릿…밤은 흥겹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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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요즘 대세 서핑, 강습 참가기

강원도 양양 서피 비치에서 한 서퍼가 테이크오프 자세를 잡으려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강원도 양양 서피 비치에서 한 서퍼가 테이크오프 자세를 잡으려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핑은 마피아 같은 것이다. 한번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다. 출구는 없다.”(켈리 슬레이터·미국의 서핑 선수 겸 배우, 서핑 세계선수권 11차례 우승)

양양 ‘서피 비치’서 KT 페스티벌 #중심 못 잡고 바다 빠져도 즐거워 #“서핑은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 #여성·젊은층 서퍼 매년 2배 늘어 #밤엔 ‘홍대앞 클럽’ 옮겨놓은 듯 #태풍 속 뛰어드는 안전의식 문제

널찍한 판자 하나에 의지해, 아무런 인공적인 동력도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거대한 파도와 맞선다. 아니, 파도와 하나가 된다. 서핑은 가장 원초적인 해양 스포츠다. 서핑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데 이어 2024 파리 올림픽에도 정식 종목으로 살아남았다. 젊은이의 기호에 맞고 중계에도 최적화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가장 바라던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한여름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Surfin' USA’(비치 보이즈)의 흥겨운 리듬처럼, 서핑은 미국과 유럽·호주 등지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스포츠였다. 이제 그 파도가 대한민국까지 집어삼킬 기세다.

10만원대 보드만 있으면 돼 ‘착한 가성비’

모래사장에서 진행된 서핑 동작 연습. 김현동 기자

모래사장에서 진행된 서핑 동작 연습. 김현동 기자

서핑 동호인은 가파른 증가세다. 대한서핑협회에 따르면 서핑 인구는 2014년 4만 명 수준에서 2015년 5만5000명, 2016년 10만 명, 2017년 20만 명으로 매년 두 배씩 늘었다. 서핑숍과 서핑학교 등 관련 업체도 2014년 50여 개에서 2017년 200여 개로 4배나 늘었다.

우리나라의 서핑은 1995년 제주도에 들어선 서핑클럽이 시작이었다. 이후 제주 중문, 부산 송정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서핑이 확산됐다. 2010년 이후부터는 강원도 동해안 양양이 뜨거워졌다. “품질 좋은 파도가 양양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2017년 6월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졌다.

양양의 죽도 해변은 ‘한국 서핑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서퍼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에 못지 않게 뜨는 핫 플레이스가 있으니 양양 하조대해수욕장에 있는 ‘서피 비치(SURFYY BEACH)’다. 마침 이곳에서 KT가 개최하는 ‘kt 5G 비치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서핑 열기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 스포츠 오디세이가 서핑 강습에 직접 뛰어들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던 지난 13일. 습기를 잔뜩 머금은 양양 하조대해수욕장에는 집채만 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 강습이 시작됐다. 강사는 서핑 보드의 명칭부터 설명해 나갔다. 보드는 길이가 3m 가까이 되는 롱 보드, 2m 정도인 숏 보드 등이 있다. 우리가 탈 보드는 롱 보드 길이에 물에 잘 뜨고 부드러운 재질로 만든 초심자용 소프트 보드였다. 보드의 앞 부분은 노즈(nose), 뒤는 테일(tail)이라고 한다. 테일 쪽에 길이 2m 정도의 끈이 있고 끈 끝에 동그랗게 말린 부분을 발목에 고정하는데 이를 리쉬(leash)라고 한다. 리쉬는 보드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졌을 때 서퍼를 지켜주는 ‘생명줄’이다.

강사는 보드에 올라타는 법에 이어 패들링(paddling) 요령을 알려줬다. 패들링이란 수영 자유형 팔젓기처럼 보드 좌우의 물을 노 젓듯이 하는 것을 말한다. 패들링을 하다가 적당한 파도가 뒤에서 오면 패들링 속도를 높인 뒤 몸을 일으킨다. 테이크오프(take off)라고 하는 이 동작이 서핑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기다. 두 손을 가슴 쪽으로 잡아당기며 상체를 들어올린 뒤 한쪽 발을 앞으로 보내고 곧바로 뒤쪽 발을 옮기며 몸을 90도 틀면서 일어서는 동작이다. 몇 번 해 보니 자세도 잘 나오고 해볼 만했다. 바다에서 파도를 뒤집어쓰기 전까지는.

강사는 안전 수칙을 수차례 강조했다. “시선은 항상 파도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보드에서 떨어지면 곧바로 리쉬 줄을 당겨 보드를 간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보드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본인은 물론 옆 사람이 다칠 수 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몇 번 더 기본동작을 연습한 뒤 드디어 바다로 나갔다. 우리 조 7명(남 3, 여 4) 실습에서 내가 가장 먼저 걸렸다. 보드를 허리에 끼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커다란 파도가 덮치면서 옆의 여성이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졌다. 강사는 “업-테일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세요”라고 했다. 파도가 오면 보드 뒤쪽을 눌러 앞 부분을 세우고 파도를 슬쩍 타 넘어가라는 뜻이었다.

적당한 위치에 오자 노즈를 모래사장 쪽으로 돌린 뒤 보드에 올라탔다. 뒤에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몸이 좌우로 기우뚱하며 몇 번이나 물에 빠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있는데 강사가 “패들링, 패들링”을 외쳤다. 힘차게 패들링을 하는 중에 강사의 “업” 소리가 들렸다. 배운 대로 두 팔을 가슴 쪽으로 당기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빼는 순간 그만 중심을 잃고 물에 처박혔다. 다행히 수영을 좀 해서인지 물은 먹지 않았다. 강사는 “마음이 급해 동작이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 다른 조도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두 번째 실습 때는 같은 조 여성이 하는 동안 바닷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파도는 계속 덮쳐오고 조류 때문에 몸이 옆쪽으로 밀려나는 걸 겨우 버텼다. 보드에 올라타서 두 발로 버티고, 패들링과 테이크오프 동작을 하는 건 상당한 힘을 필요로 했다. 문득 점심을 거른 게 생각나면서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나마 두 번째는 좀 나았다. 한 발을 앞으로 보내고 몸을 회전하는 동작까지는 됐지만 제대로 서지를 못해 엉거주춤하다 보드에서 떨어졌다.

서핑 연습을 하고 있는 정영재 기자.

서핑 연습을 하고 있는 정영재 기자.

세 번째는 패들링 때 좌우로 기우뚱대는 현상이 확 줄었다. 몸에 힘을 뺐다는 뜻이다. 하지만 테이크오프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물에 처박혔다. 헉헉대면서 모래사장으로 올라왔다. 다른 조원을 보니 조금씩 일어서는 사람도 있고, 무릎을 꿇고 있다가 바다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어렵다고, 힘들다고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1시간 30분의 강습이 끝나자 강사는 “오늘 워낙 강파도여서 힘드셨을 겁니다. 일어서는 동작까지 못한 분도 많지만 보드를 경험하고 파도를 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입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무섭고, 짜릿하고, 아쉬운 첫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핑이 대세가 된 건 젊은층과 여성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서핑은 젊은이의 도전의식과 다이내믹한 활동, 몰입의 정서에 부합된다. 더 중요한 건 요트나 스킨스쿠버 등 다른 해양 스포츠에 비해 비교적 싼값에 즐길 수 있다는 거다. 서핑은 보드 하나만 있으면 된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입문용은 3만~10만원대, 동호인용은 10만~30만원대에 살 수 있다.

영하 100도를 넘는 냉각 질소 사우나 체험 모습. 김현동 기자

영하 100도를 넘는 냉각 질소 사우나 체험 모습. 김현동 기자

서핑은 여성들이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근력이나 순발력보다는 균형감각이 서핑에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강습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30% 정도 더 많았다. 서퍼들은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이자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서피 비치의 여름밤은 ‘홍대앞 클럽’을 옮겨온 것처럼 화려한 별세계로 바뀐다. 탁 트인 해변에서 즐기는 맥주 파티와 클럽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젊은이들을 끄는 요인이기도 하다.

KT가 이곳에서 비치 페스티벌을 연 것도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페스티벌을 기획한 KT의 한 직원은 “5G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느낄 수 있도록 행사를 마련했다. 고객들이 액티비티를 하면서 5G의 첨단 기능을 익히는 데 서핑만큼 좋은 소재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5G 서비스 체험존, 짚라인, 물대포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됐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곳은 ㈜이온인터내셔널에서 제공한 ‘크라이오 테라피’라는 냉각 사우나 체험이었다. 영하 100도 이하의 냉각 질소를 분사하는 원통 안에서 2분만 있으면 온몸이 덜덜 떨린다. 피로회복, 다이어트 등에 효과가 있는 건강 관리법이라고 했다.

서핑이 올림픽 종목에 채택됨으로써 엘리트 스포츠 쪽으로도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대한서핑협회는 2009년 국제서핑협회(ISF)에 5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도쿄 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전도 지난 6월 전남 고흥에서 열렸다. 남자 조준희(강원), 여자 이나라(부산) 등 6명의 국가대표가 탄생했다. 이들의 기량은 미국·브라질 등 서핑 강국에 비해 떨어지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2020·2024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서핑 인구 확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안전이다. 우리나라에는 하와이나 발리처럼 천혜의 파도를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해변이 없다. 그래서 태풍이 올라오거나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오히려 서퍼들은 설렌다. 지난해 10월 태풍 콩레이가 왔을 때 50여 명의 서퍼가 해경에 신고서를 내고 부산 송정해수욕장에 뛰어들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또 국내에 서핑 공간이 속속 생겨나면서 지역민과 서퍼들의 마찰도 커지고 있다. 서퍼들이 자발적으로 해안을 청소하는 ‘비치 클린’ 행사도 갖지만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서장현 대한서핑협회장은 “서핑 지역을 만들어주신 지역민과 지역 서퍼들에 대한 존중과 소통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서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스스로 환경을 지키려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핑 초보자 가이드

1 한 순간도 파도에서 시선을 떼지 마라.
2 파도가 오는 방향과 보드는 수직선이 되게 하라.
3 테이크오프(몸을 일으킴) 때 급한 마음에 서두르지 마라.
4 물에 빠지는 순간 리쉬 줄을 당겨 보드를 확보하라.
5 해안에는 항상 강한 조류가 있음을 잊지 마라.
6 동작이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말고 파도를 타는 느낌을 즐기라.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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