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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日, 징용판결에 대한 보복…모두 피해자인 승자 없는 게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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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해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해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변명을 어떻게 바꾸든, 일본의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며 “다른 주권국가 사법부의 판결을 경제 문제와 연결시킨 것으로서, 민주주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에도 위반이 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청와대 충무실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며 “일본은 당초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내세웠다가, 전략물자 수출관리 미비 때문이라고 그때그때 말을 바꿨다. 그러니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에서 제외했던 2일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은 이날도 대일(對日)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이 사태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지금까지 한 조치만으로도 양국 경제와 양국 국민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국제 자유무역 질서가 훼손되고, 결국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거나 “일본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 “자국에 필요할 때는 자유무역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나라로, 이번 일본의 조치는 매우 이율배반적” 같은 말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이고 장관급인 부의장을 별도로 둔다. 전체회의는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 만에 열렸는데, 당시 부의장은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현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 물러났다. 통상 연말에 한 차례 자문회의를 개최해온 것과 달리 8월에 별도 회의를 소집한 것은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그만큼 엄중히 본다는 의미라고 한다.

김 원장에 이어 부의장이 된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가 이날 회의 진행을 이끌었다. 이 부의장은 모두발언에서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적인 자유무역 질서에 빨리 편승해 개도국 중에서 선진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가 됐고, 여기에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일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 당국자는 한·일 간에 수직 분업체제를 만들어 이를 지속하겠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한국은 그 후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추월했다. 일본으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며 “지금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은 그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아세안(ASAE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인도 등 시장 다변화와 중소기업 지원 확대 등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일본이 3개 품목을 개별허가품목으로 바꿨을 때부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책을 준비·발표해왔다”며 “물론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실제 피해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불확실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교적 노력을 계속 해나가겠지만, 과도하게 한 나라에 의존한 제품에 대해서는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자립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분 가량 진행된 이날 자문회의에는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 교수 중심의 자문위원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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