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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 최고의 신은 아내"라던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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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0)

남편이 아직 살아있다면 앞집 아저씨와 죽이 잘 맞아서 날마다 소금 절인 생선 같은 모습이거나, 아니면 같은 성격의 남자들이니 서로 기 싸움에 칼부림 나게 싸우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pixabay]

남편이 아직 살아있다면 앞집 아저씨와 죽이 잘 맞아서 날마다 소금 절인 생선 같은 모습이거나, 아니면 같은 성격의 남자들이니 서로 기 싸움에 칼부림 나게 싸우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pixabay]

이번 회는 두 남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 사람은 먼저 떠난 남편이고 한 사람은 살아있는 앞집 아저씨다. 앞집 아저씨는 어쩌면 내 남편의 이전 모습이기도 해 두 사람 이야기만 해도 너무 재밌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앞집 아저씨’ ‘적군’은 남편이 살아있을 때 내가 남편에게 지어준 닉네임이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은 쉬라고 휴일을 준 하느님의 지시도 무시하고 날마다 ‘전쟁’을 치르며 살았다. 하늘에서 보면 쉬지도 않고 다정한 대화를 한 것으로 판단하는지 아저씨네 부부를 나의 수호 천사로 보내주는 것 같다. 남편은 잠깐 형님 동생하며 어울리다가 자기 마누라 잘 부탁한다 하고 떠났으니 매사에 신경 써주고 온갖 간섭을 다 한다. “대문 닫아라~ 대문 열어라~”

‘소금 절인 생선’같은 남편과 앞집 아저씨  

남편이 아직 살아있다면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아 날마다 ‘소금 절인 생선’ 같은 모습이거나, 아니면 같은 성격이니 서로 기 싸움에 칼부림 나게 싸우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늘 술에 절어있지만, 기분은 날마다 좋다는 것이다. 꼭 해야 할 일은 배를 째고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덕분에 동네에 많은 발전적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쓸데없이 앞장선다고 늘 부인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동네 나이든 어르신들에겐 든든한 아들이다. 장터의 다방 아가씨들 모두 본인의 애인이지만, 부인만큼은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내 아저씨, 그리고 앞집 아저씨다.

남편과 앞집 아저씨는 늘 술에 절어있었지만 기분은 날마다 좋았다. 꼭 해야 할 일은 배를 째고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두 사람이었다. 덕분에 동네에 많은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중앙포토]

남편과 앞집 아저씨는 늘 술에 절어있었지만 기분은 날마다 좋았다. 꼭 해야 할 일은 배를 째고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두 사람이었다. 덕분에 동네에 많은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중앙포토]

오늘도 팔각정 쉼터엔 동네 어르신들의 막걸리판이 벌어져 한껏 취해 계신다. 언젠가 깊은 산골짜기까지 종교를 전파하러 온 두 사람이 있었다. 모두 종교가 있다며 외면하는데 남편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받아주었다.

“그쪽이 말하는 신은, 믿으면 뭘 주능교?”
“신은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시고 어쩌고저쩌고~~미주알고주알….”

한참을 듣고 있다가 남편은 전도인에게 술 한잔을 권하며 말했다. “이래 안 돌아 댕기도 되고, 믿고 의지하면 용서도 잘 해주고 밥도 주고 사랑도 주고 의지도 되는 신 내가 소개해 주리다. 당신이 믿는 하느님은 하늘로 돌아갈 때 즈음 부르소, 살아 있을 때 최고의 신은 당신 부인이요~”

전도인이 정색을 하며 크게 말했다.“선생님, 신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부활이란 기적을 행하신 분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핵심입니다. 그걸 믿으셔야 합니다….”

남편이 껄껄 웃으며 시큰둥하게 받아쳤다.“부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그 이야기 아닝교…? 에이~집에 계시는 마누라 신은 그보다 한 수 위제~”

갑자기 신으로 등극한 나도 좌불안석 이상한 이야기에 부끄러워졌다.

“집에 올 때마다 투덕거리는 우리 부부를 한심한 듯 쳐다보며 딸아이가 그러더구먼. 오늘도 아빠는 도대체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신 거예요? 내사마 최소 하루에 세 번은 죽었다가 부활하니 마누라가 행하는 기적이 더 세제.”

남편 “살아 있을 때 최고의 신은 아내”

그분들은 사오정 아저씨로부터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날 이후  내가 그렇게 잔소리꾼이었나를 반성하며 문득문득 계절 바뀌듯 조용해지곤 했다.

앞집아저씨는 오늘도 힘겨운 나무를 지게에 지고 강을 건너던 열다섯 사춘기 소년이 돼 애잔하고 슬픈 낙동강 연가를 노래한다. 처절하고 힘들던 시간도 나이가 들면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어릴 적 사연을 모두 함께해온 어르신들은 눈시울을 적시다가 고개를 흔들며 배꼽 잡고 웃기도 한다.

언니가 퇴근길에 눈호령을 한다. 퇴근한 부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간 앞집 아저씨네가 시끄럽다. 언니 목소리가 담을 넘는 걸 보니 덩치 큰 앞집 아저씨한테도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내일은 두 분에게 사시는 동안 더 오래 부활 소식을 만들라고 밥 한 끼 대접해야겠다. 8월의 뜨거운 여름날에 재밌는 인생극장이 또 한편 끝났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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