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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검·검사장 6자리 비워놨다, 검찰 인사파동 또 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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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

[현장에서]“인사 두 번이면 회생 불가”…文 정부의 검찰 길들이기?

지난달 31일, 권순철(50‧사법연수원 25기)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20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며 남긴 말이다. 그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등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의 지휘라인에 있었다. 권 차장은 "(이번 인사가) 저에게는 '그래, 수고했어. 충분했어'라는 목소리로 들립니다"라며 글을 이었다.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권 차장에겐 이번 인사가 '옷을 벗고 나가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음 직하다.

검찰 인사 후폭풍…"정권이 완전히 검찰 장악"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하기 위해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하기 위해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59‧23기) 검찰총장 취임 이후 단행된 검찰 고위직 및 중간 간부 인사에 대한 후폭풍이 심상찮다. 윤 총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된 지난 6월 17일 이후 5일 현재까지 의원면직 된 검사는 70명에 육박한다.

인사 이후 연이은 검사들의 사의 표명에 한 검사는 "검사 게시판 들어오기가 무섭다"는 댓글을 검찰 내부망에 달았다. 기자가 만난 서울지역의 한 중간 간부급 검사는 "댓글 남기는 것마저 찍힐까 부담스럽다"며 "정부가 이번 인사를 통해 검찰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촌평을 남겼다.

검사에 대한 최종 인사권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검찰청법 제34조는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검찰 인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약진, 그리고 정권을 겨눈 검사들의 좌천. 청와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윤석열 사단'을 대거 요직에 배치하며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또 하나, 전국의 검사들에게 정권에 각을 세우면 어떻게 되는지 인사를 통해 보여줬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 정권을 겨냥한 첫 수사였던 서울동부지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담당 지휘라인 3명은 모두 옷을 벗었다.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공개 반발했던 문무일 전 검찰총장의 흔적 지우기도 눈에 띈다. 문 전 총장과 함께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던 김웅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은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교수로 발령 났다.

문 전 총장은 취임 이후 전국 검찰의 특별수사 축소와 검찰 과거사 사과 등 나름의 검찰개혁 방안을 실현해왔다. 그가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검찰 권력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적임자로 직접 발탁한 사람이 바로 김 단장이었다. 김 단장은 『검사내전』이란 제목의 에세이집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다. 김 단장은 이 책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정부의 검찰개혁 방안과 결이 달랐을 뿐이다. 정부 안을 비토한 결과는 한직 발령이었다.

文 대통령 저서엔 "인사 두 번이면 회생 불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법조계에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인사 파동'이 있을 것이란 전망을 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인사에서 고검장과 검사장급 자리를 각각 3자리씩 비워놨다"며 "승진을 빌미로 한 검찰의 충성 경쟁을 유도하려는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정부의 이번 검찰 인사가 예측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과 김인회 인하대 로스쿨 교수가 2011년 공동 집필한『검찰을 생각한다』엔 "아무리 강단 있는 검사라도 인사문제 앞에선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검찰 간부는 해마다 보직인사를 받는데 연거푸 두 번만 한직으로 발령이 나면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대목이 있다. 다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먼저 이뤄진 다음 인사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윤석열 총장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사건을)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서 국민의 희망을 받았다"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며 윤 총장에게 덕담을 건넸다. 이 발언 일주일 뒤 단행된 검찰 중간 간부급 인사 결과에 대해 일선 검사들이 상당히 동요하고 있다. 정권의 말과 행동이 달라서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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