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베의 괴벨스…21세기판 정한론 총대 멘 세코 경제산업상

중앙일보

입력

"RCEP 장관회의에서 한국이 (회의와) 전혀 상관없는 일본의 수출관리조치에 관해 발언했기 때문에 나도 곧바로 반론했다. 이하 제 발언을 괄호로 묶어 소개한다. 다국간 회의에서 타국의 발언은 외부로 소개하지 않는 게 룰이기 때문에 한국의 발언은 소개하지 않겠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YTN캡처=뉴스1]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YTN캡처=뉴스1]

지난 3일 저녁 6시 23분 중국 베이징에 머물던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베이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각료회의에서 유명희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설전을 벌인 직후로 보인다.

RCEP에서 한국 비난한 뒤 폭풍 트윗 9차례 #'화이트 배제'발표,독설 퍼붓는 아베 심복 #한국 국민엔 "최고의 비호감"으로 등극 #홍보전문가로 '자민당과 아베의 괴벨스' #아베 "괴벨스의 말로 비참하니 조심"조언도 #'관저 6인회의' 신설한 역대 최장 부장관

이후 그는 "일본의 조치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규범에 기초한 무역체제를 만들겠다'는 RCEP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유 본부장의 주장에 자신이 어떻게 반박했는지를 설명하는 8차례의 '폭풍 트윗'을 했다. 풀리지 않는 분을 트위터에 쏟아낸 모양새다.

세코는 요즘 한국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못지않은 '국민 비호감'으로 등극했다.

2일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이 일본 각의에서 처리된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린 이도 세코였다. 그는 기자회견에 마치 개선장군처럼 등장해 "우회 수출이나 목적 이외 전용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국 정부가 상응 조치로 일본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자 출장지 중국에서 "일본 기업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비아냥댄 것도 세코였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일본 정부의 이번 한국 때리기는 1870년대 전후 일본에서 대두했던 정한론(征韓論ㆍ조선공략론)에 비견된다. 그래서 ‘21세기형 정한론’라고도 불리는 데, 그 선두에 세코 경제산업상이 서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홍보전문가다. 그래서 나치 정권의 선전 장관이던 파울 괴벨스를 본따 ‘자민당의 괴벨스’로 자주 불린다.

조부는 경제기획청 장관, 부친은 학교법인이사장을 지냈다. 와세다대(정치경제학부) 졸업 후 일본전신전화(NTT)에 입사한 뒤 파견 형태로 미국으로 건너가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그 뒤 회사로 돌아와선 NTT 홍보부의 보도 담당을 지냈다. 자치(내무)대신을 지낸 숙부의 사망 직후 회사를 그만두고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참의원 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뒤 2005년 중의원 선거 때 자민당 홍보본부장 대리로 미디어 전략 등을 총괄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6년 9월 제1차 아베 내각 발족 때 홍보담당 보좌관으로 총리관저에 입성하면서 ‘아베의 괴벨스’가 됐다.

홍보전략과 함께 당시 아베 총리가 올인했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프로젝트', 즉 일련의 우경화 정책 추진을 위한 여론 수렴도 담당했다.

그의 별명이 ‘괴벨스’라는 얘기를 들은 아베 총리가 "고등학교 때 읽은 책"이라며 괴벨스 관련 서적을 세코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당시 아베 총리가 세코 장관에게 "괴벨스의 말로가 비참했던 거 알지? 당신도 신경쓰는 게 좋아"란 농담을 던져 화제가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은 뒤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은 뒤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총리관저에서 지나치게 일 욕심을 부리다 비서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팀 워크가 완전 와해하면서 관저 내 홍보보좌관직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 시기 세코는 아베 총리에 대한 충성심을 굳히게 된다.

아베 총리가 정권을 탈환한 2012년 말부터 정치인 출신으론 역대 최장기록인 무려 1317일 동안 관방 부장관으로 아베 총리를 보좌했다. 관방 부장관직은 우리로 따지면 청와대 비서실장(관방장관) 밑에서 각 부처 업무를 조율하는 수석비서관에 해당한다. 그는 "아베 총리는 일본을 다시 세울 유일한 인물","아베 총리를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ㆍ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하겠다"는 발언도 쏟아냈다.

그는 전형적인 ‘꾀돌이 형’ 참모다. 2014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당시 일화.

조작사건 핵심 인물은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여성 연구원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ㆍ당시 31세)였다. 하루아침에 ‘과학계의 신데렐라’로 떴다가, '최악의 과학 사기꾼'으로 고꾸라졌다.

저널리스트 다자키 시로(田崎史郞)의 저서 『아베 관저의 정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오보카타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자 자신이 의장을 맡은 ‘종합과학기술회의’에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세코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토대 교수의 조언을 받아 직전에 이를 취소시켰다. 이를 통해 아베의 신임을 더 얻게 됐다고 한다.

2012년 말 재집권한 아베에게 "총리와 관저 핵심 참모들이 하루에 5분이라도 소통해야 한다"며, 현재 관저 의사결정의 핵심이 된 '6인회의'의 설치를 제안한 것도 세코였다.

아베 총리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조차도 모르게 충복인 세코를 앞세워 지난 7월 1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단행했다.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던 이마이 다카야 총리 비서관이 정부전용기를 통해 귀국하는 모습. [사진=지지통신 제공]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던 이마이 다카야 총리 비서관이 정부전용기를 통해 귀국하는 모습. [사진=지지통신 제공]

이번 조치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총리관저의 실세 이마이 다카야(今井尚哉)수석비서관도 경제산업성 출신이다.

아베는 일본 정부 내 최고의 충성집단으로 불리는 경제산업성의 심복 두 사람에게 한국을 찌를 칼을 맡긴 셈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