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경화·고노 막판 회동에도 힘 못 쓴 한ㆍ일 외교당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각의가 2일 한국을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일관계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8개월이 흘렀지만, 문제를 풀어가야할 한·일 외교 부처는 제대로 된 접점을 찾지 못 했다.

방콕 장관회담, 6월 오사카 회동 '데자뷔' #강경화-고노 지난 8개월 간 평행선만 달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일본 각의 전날인 1일 막판 회담을 가졌지만 양측 입장 차만 확인한 자리가 됐다. 강 장관은 회담이 끝난 후 “우리로서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수 밖에 없다. 한·일 안보협력의 틀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발언, 이번 일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을 연계할 수 있음을 대놓고 시사했다. 막판 ‘초강수’를 던진 셈이지만 일측의 결정을 뒤집지는 못 했다.

이번 외교장관 회담은 6월 28일 일본 오사카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20분 회동'의 데자뷔였다. 강 장관은 고노 외상과 짧게 면담했는데 '회담'이란 용어를 양국이 쓰지 않을 만큼 분위기는 험악했다. 일본은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의 '다치바나시(立ち話)'란 표현까지 썼다. 그러고 나서 사흘 뒤인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수출규제 방침을 전격 발표했지만,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경제보복의 낌새도 전달받지 못 했다. 고노 외상조차 경산성의 발표를 직전에야 알았다는 말이 나왔다. 한 대일 외교 소식통은 “이 에피소드만 봐도 일본 내각에서 외무성의 입지가 줄어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외무성 입만 보고 있던 외교부도 안이했다”고 지적했다

 유명무실 한ㆍ일 외교 부처

 한·일 정부는 겉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지만, 정작 주무부처들은 힘을 발휘하지 못 했다. 외교부가 공개한 것만 따져도 작년 10월 30일 강제징용 판결부터 2일까지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은 5차례의 대면 회담(회동)을 했다. 일본 외무성은 강제징용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요청한 카드들이 전혀 먹히지 않으면서 정부 내에서 운신의 폭이 줄어 들었을 수 있다. 1월 8일 한·일 청구권협정상 외교협의(3조 1항)→5월 20일 중재위원회 회부(3조 2항)→6월 19일 제3국 중재위(3조 3항)까지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교부도 내우외환을 겪으며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측면이 있다. 2017년 ‘위안부 검토 TF’ 등을 거치며 전통적인 대일 외교라인이 대폭 물갈이 됐다. 이 일로 국감에서 실명이 거론됐다가 물러난 주일본대사관의 경제공사 자리는 넉 달째 공석이다. 6월 19일에서야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 강제징용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일측이 단박에 거절했다. 일본통으로 꼽히는 조세영 제1차관까지 도쿄로 날아가 일본을 설득했지만 이미 보복조치로 기울어진 여론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여기다 4월 말 한미 정상회담 통화유출 사태 등으로 현직 외교관이 파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잇따랐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청와대와 총리 관저가 주도하는 국면이 되다보니 양국 담당 부처들이 메신저 역할에 그치는 측면도 있다"며 "특히 외교부는 위안부 검토 TF와 강제징용 재판거래 논란 등을 거치며 내부적으로 위축이 돼 있고, 정책제안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 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