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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구 보호 위해"…중국산 무허가 선박자동식별장치 유통·사용한 55명 검거

중앙일보

입력

해양경찰청은 해상에서 중국산 무허가 선박자동식별장치를 사용한 이들을 검거했다. [해양경찰청 제공]

해양경찰청은 해상에서 중국산 무허가 선박자동식별장치를 사용한 이들을 검거했다. [해양경찰청 제공]

제주도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선장 A씨(45)는 평소 중국 어선이 사용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보고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선박 자동식별장치는 항해 중인 선박이 충돌을 막기 위해 GPS 상 위치 등 신호를 보내는 장치다.

국내 선박자동식별장치는 어구에 설치할 수 있는 전자용 부위가 있어 신고하고 사용해야 했다. 절차가 복잡해 번거로울 때가 많았다. 가격대도 높았다. 국내 선박 자동식별장치는 단말기를 포함해 총 145만원이었다. 반면 중국산 제품은 15만원밖에 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동료 어민들과 함께 수요가 많이 있으니 중국산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구해달라고 제주도 한 종합상사에 요청했다. 종합상사 대표 B씨(50)는 다시 경기도의 한 전자업체 대표 C씨(62)에 수입을 요청했다. C씨는 지난 2월~5월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중국산 미인증 선박 자동식별장치 300개를 수입했다. 그중 237개가 B씨를 거쳐 제주 어민 34명에게 전달됐다.

가격 저렴, 복잡한 등록절차 피하려

해양경찰청은 중국산 무허가 선박자동식별장치를 유통 판매한 업체를 찾아 제품을 확인했다. [해양경찰청 제공]

해양경찰청은 중국산 무허가 선박자동식별장치를 유통 판매한 업체를 찾아 제품을 확인했다. [해양경찰청 제공]

이 같은 행위는 해양경찰청이 무허가 선박 자동식별장치 유통‧사용 행위 단속에 나서면서 발각됐다. 해양경찰청은 지난 5월 20일부터 이번 달 19일까지 무허가 선박 자동식별장치 유통·사용 행위를 단속한 결과 불법 행위 53건을 적발하고 55명을 검거했다고 29일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중국산 미인증 선박 자동식별장치는 경찰서 상황실이나 함정의 화면에 정식 인증된 선박 자동식별장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C씨 등은 정식 인증을 받지 않은 중국산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수입해 판매하고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경에 따르면 C씨는 지난 2~5월 중국산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1대당 9만8300원에 300개를 수입한 뒤 택배로 B씨 등 2명이 운영하는 선박용품 업체에 유통했다. B씨 등은 중국산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사들인 뒤 어선 선장들에게 1대당 15만원에 판매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충남 태안군  중국산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설치한 어선 선장(51) 등 52명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중국산 선박 자동식별장치가 국내 선박 자동식별장치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복잡한 등록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돼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어구를 선박으로 인식해 사고 유발할 수도  

해양경찰청이 압수한 중국산 무허가 선박 자동식별장치. [사진 해양경찰청]

해양경찰청이 압수한 중국산 무허가 선박 자동식별장치. [사진 해양경찰청]

선박 자동식별장치는 해상에서 수색 구조 작업을 하거나 선박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어구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용도로는 허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경에 따르면 일부 어민들은 이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구의 위치를 쉽게 파악하고 항해하는 선박들로부터 자신의 어구를 보호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무허가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어구에 부착해 사용하면 항해하는 선박의 항해 장비 화면에는 실제 선박과 동일한 신호가 표출된다.
이 때문에 선박들은 어구를 선박으로 인식해 급선회하거나 불필요하게 항로를 변경하게 된다. 해경 관계자는 이로 인해 선박 간 충돌 등 대형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무허가 선박 자동 식별장치가 어구에서 떨어져 나와 표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항해 중인 선박과 접촉하면 해상교통관제센터나 인근 선박에서 선박 간 충돌로 오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해경은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허가받지 않은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불법 사용하는 행위를 지속해서 단속하기로 했다. 해경 관계자는 “중국산 미인증 선박 자동식별장치는 수입·판매하는 것도 유통으로 보기 때문에 전파법상 처벌 대상”이라며 “무허가 선박 자동식별장치가 전파 질서를 교란하는 등 해상교통 안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불법행위 적발 시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파법에 따르면 인증을 받지 않은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판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를 사용한 경우 1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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