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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 시골 좋아하니?" 내가 나에게 물어본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8)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식하는 사물에 대한 느낌은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 마음으로 만났다고 해서 현실의 관계에서 시간이 쌓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사진 한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식하는 사물에 대한 느낌은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 마음으로 만났다고 해서 현실의 관계에서 시간이 쌓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사진 한순]

창의 정면 쪽에 죽어가는 나무 두 그루를 베어냈다. 지난해부터 몸살을 앓는가 했더니 점점 말라가 급기야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두 그루 밤나무다. 이웃은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러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저 나무를 왜 베어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저 나무들이 공사 때문에 치인 상처를 잘 이겨내고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 하나와 밤나무가 저 정도 자라려면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뎠어야 했을 텐데…’ 하는 어정쩡한 마음뿐이었다. 공사에 지쳐 이제 무엇에 손대는 것이 귀찮아지기도 했다. 결국 베어낼 나무를 나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다가 마음으로 나무를 자르기도 했다가 하는 세월이 일 년 정도 지났다.

유리창 밖의 조그만 텃밭이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잔디에 풀을 뽑으러 나갈 때는 긴 바지에 긴소매를 입고, 목에 수건도 하나 두른다. 고무장갑에 모자를 쓰고 장화까지 신는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곤충들과 벌,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뱀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태양 볕에 풀 몇 포기만 뽑아도 땀이 흥건히 흘러내리니 목수건과 모자는 필수다.

나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땀범벅이 되자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실내로 들어오고 만다. 내가 나를 보아도 웃음이 나올 정도다. 내가 정말 시골을 좋아하는건가? [사진 pxhere]

나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땀범벅이 되자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실내로 들어오고 만다. 내가 나를 보아도 웃음이 나올 정도다. 내가 정말 시골을 좋아하는건가? [사진 pxhere]

유리창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땀범벅이 된다.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해 잡초를 미처 다 뽑지 못하고 고무장갑이며 모자를 벗으며 유리창 안 실내로 들어온다. 그리고 밖의 일을 한 시간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내가 나를 보아도 웃음이 나올 정도다. 이런 때 나는 내게 질문한다. ‘너는 정말 시골을 좋아하니? 네가 정말 시골을 알기나 하니?’

이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시골에서 농산물로 소출을 거두어내고 이른 새벽 논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들에게 유리창 안의 시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자연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우선 시골이 ‘쉼’의 장소다. 나흘 도시의 빽빽한 밀도에서 벗어나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자연의 헐렁한 공간에서 맥 놓고 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리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리창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사람들 모습의 차이다. 그것은 곧 내가 세상을 대하는 마음의 차이다. 순간적 착시로 내가 유리창 밖에 있는 듯하나 나는 유리창 안에 고스란히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나의 허약함을 보는 일은 그리 기쁘지 않지만 감사한 일이다. 요즘 나의 생활은 도시에서 도망치듯 시골로 와 시골의 땡볕에 지치고 힘들 즈음 다시 서울의 안전한 시멘트 블록 안으로 쏙 숨어드는 듯한 모습으로 패턴화되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을 한 팀씩 초대해 소박한 요리를 하고 자연 속에서 눈을 맞추며 마음을 나눈다는 사실이다. 주말에 손님을 치르고 나면 몸은 솜처럼 늘어지지만, 마음은 씻은 듯 정갈해지기도 한다.

워킹맘으로 구두 뒤축이 언제 닳았는지도 모르게 뛰어다녔던 지난날들. 퇴근하자마자 장바구니를 들고 발이 휘어라 집으로 달려가 저녁상을 차렸다. 그러는 동안 주변의 귀한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중앙포토]

워킹맘으로 구두 뒤축이 언제 닳았는지도 모르게 뛰어다녔던 지난날들. 퇴근하자마자 장바구니를 들고 발이 휘어라 집으로 달려가 저녁상을 차렸다. 그러는 동안 주변의 귀한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중앙포토]

그동안 나는 워킹맘으로 구두 뒤축이 언제 닳았는지도 모르게 뛰어다녔다. 내 주변에서 늘 격려해주던 사람들에게 제대로 시간을 내본 적이 없었다. 퇴근하자마자 장바구니를 들고 발이 휘어라 집으로 달려가 저녁상을 차리고 나면, 밥 먹을 기운조차 없어 방 한구석에 한참을 기대어 있다가 밥을 먹는 게 일상이었다. 당연히 주변의 귀한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마음속으로 만나곤 했다.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고,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창밖을 보며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사연을 쌓아가고 있을 때 친구는 마음속으로 깊이 토라져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를 초대했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는 못 가” 했다. 그것은 그 친구가 내게 종종 보여주는 많이 삐졌다는 표시 중 하나다. 아마 나도 그 말을 그 친구에게 알게 모르게 많이 했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친구에게 카톡으로 음악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보내는 동안 반응이 없던 그 친구가 어느 날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보낸 음악을 그 친구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아직 확인해보지 않았다. 그 친구가 반응이 없어도, 또 가끔 반응을 해와도 나의 마음은 사실 예전과 같았다.

그러다 불쑥 나는 유리창 안의 내 친구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도시에서 나흘 살고 시골에서 사흘 사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반응이 좀 신경 쓰였다. 우리는 바쁘고 정신없던 시절의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으로 손님들을 초대하나 혹시 자랑하는 모습으로 보일까 걱정됐다.

한창 일할 나이에 어떻게 전원에 들어올 생각을 했나요? 어느 분의 질문에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꼈다. 질문은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 실물과 만나는 문을 만들어준다. [사진 pxhere]

한창 일할 나이에 어떻게 전원에 들어올 생각을 했나요? 어느 분의 질문에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꼈다. 질문은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 실물과 만나는 문을 만들어준다. [사진 pxhere]

어느 날 갑자기 손님을 맞았다. 외방선교회를 후원하는 분들이었다. 처음 본 그들은 우리 집을 바라보며 마음껏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축성이 끝나고 매실차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질문했다.

“오십 대 중반이면 아직 한창 일할 나인데, 어떻게 전원에 올 생각을 했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꼈다. 남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일찍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빨리 지친 것 같아요.”

그들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내려간 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나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절약했다. 그리고 어느 날 늘 꿈꾸던 우리의 이상을 현실로 감행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이 신경 쓰이고, 초대를 주춤하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오십이 될 때까지 세상과 대화했으면, 이제 나의 길을 찾아 나와 대화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의 사고방식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어떤 현상에 대한 내 감정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단순히 유리창 안에서 본 창밖 풍경일 수도 있다. 나의 감정을 믿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질문이다. 그 질문은 무턱대고 일어나는 감정을 넘어 그 사람의 속사연을 듣게 한다. 질문은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 실물과 만나는 문을 만들어준다.

이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의 한 마디 질문이 나와 남편의 마음을 가볍게 풀어놓았다. 사람 관계에서 내가 상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착각이다. 그것은 대화의 장벽이 되고 선입관의 기초가 된다. 창밖의 풍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차 한 잔을 들고 집을 나와 길가에 어떤 야생화들이 피나 천천히 살피며 걷다 보면 처음 만나는 이름 모를 꽃들이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 유리창 밖으로 나왔구나. 나는 이곳에 살고 있어. 어떻게 이렇게 시골 산골까지 들어오게 되었니?”

한순 시인·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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