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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머슴 같은 내게 여성성 일깨워준 돌 쪼는 벗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7)

벗을 만나러 구룡령으로 향했다. 그는 갖가지 야생화를 아끼고 가꾼다. 그가 돌보는 정원에는 개망초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그는 개망초에 '여름눈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름눈꽃은 후끈한 더위를 씻는 세밀하고 날렵한 빙수 조각이 둥그렇게 둘러앉은듯한 모양이다. [중앙포토]

벗을 만나러 구룡령으로 향했다. 그는 갖가지 야생화를 아끼고 가꾼다. 그가 돌보는 정원에는 개망초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그는 개망초에 '여름눈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름눈꽃은 후끈한 더위를 씻는 세밀하고 날렵한 빙수 조각이 둥그렇게 둘러앉은듯한 모양이다. [중앙포토]

서울과 양평을 오간 것이 몇 년 지났을 때였다. 이 기간에 몸과 마음의 기운을 모아 시골집에 오롯이 정성을 쏟았다. 마치 나에게는 서울과 양평 길만 있는 듯이 그 동선을 반복했다. 화판만 바라보며 붓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 들어 먼 숲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나들잇길에 나섰다. 구룡령 깊은 계곡 산방에 돌 쪼는 벗이 있다. 이 벗은 구룡령 웅숭깊은 산속 생활을 간간이 보여주며 야생화 사진과 이름, 유래를 소개하고 있었다.

시골 생활을 하며 내가 이름을 모른다 해 무조건 잡초라 부르기에는 내가 아는 식물의 이름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그래서 구룡령 벗이 소개하는 식물도감 같은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벗은 요즘 전국 어디든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개망초 꽃을 ‘여름눈꽃’이라 이름 붙이고 잡초 정원을 가꾸고 있다. 여름눈꽃이란 이름을 입속에 오물거리며 바라보는 개망초 무더기는 한여름 더위를 씻는 빙수 조각들이 원의 모형으로 빙 둘러앉은 모습이다.

집 안에 걸어 놓고 싶어진 독일제 공구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올려주는 글 속에서 철근과 철근 사이를 철사로 연결해 묶어주는 공구 사진이 눈에 쏙 들어왔다. 독일제 공구인데 공구 자체가 주물로 만든 작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그 공구가 갖고 싶었다. 사실 실제 사용 용도는 별로 없을 것 같았지만, 집 안 어딘가에 오브제처럼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벗들은 공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만 여자였다. 남자들 속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좀 머쓱해졌다. 나는 왜 공구에 열광하지? 남자들이나 좋아할 법한 공구에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처녀 시절 나는 오빠들의 티셔츠나 아버지의 낡은 점퍼를 잘 걸치고 다녔다. 그 옷이 주는 해방감과 편안함 그리고 유니크함이 나를 끌었던 것 같다. 어머니와 언니는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나에게 “창피하지도 않니?”라며 못마땅해했다.

어머니는 오빠들의 속옷을 빨 때면 옷을 하얗게 빨고 폭폭 삶아 흰색이 햇살에 빛나도록 말린 다음, 빨래를 갤 때는 손으로 주름진 곳을 싹싹 문질러 손 다리미질을 했다. 언니도 자기 투피스를 깨끗이 빨아 다림질을 싹 해서 옷걸이에 걸고 그 위에 실크 보자기를 살짝 씌워 먼지가 앉지 않도록 했다. 두 여자는 천상 여성이었다.

선머슴 같이 털털했던 나는 남자들 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다림질을 하고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보다 공구를 더 좋아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고쳐보곤 했다. 어느 날은 기계 장치를 뜯어 그 안의 온갖 회로와 부품을 구경하기도 했다. [사진 pixabay]

선머슴 같이 털털했던 나는 남자들 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다림질을 하고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보다 공구를 더 좋아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고쳐보곤 했다. 어느 날은 기계 장치를 뜯어 그 안의 온갖 회로와 부품을 구경하기도 했다. [사진 pixabay]

이 두 여성에 비하면 나는 매우 보이시하고 덜렁거리고 거칠었다. 그러니 그녀들의 잔소리는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니고, 나는 아무 상관 없이 오빠와 아버지의 행동에 주목했다. 아버지가 집 안의 여러 곳을 손볼 때면 나는 공구를 들고 아버지 뒤를 따라다녔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흙손을 가지고 깨져나간 담 모퉁이를 정성껏 매만지는 섬세한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전기 콘센트를 만질 때면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다음 차례에 필요한 연장을 건네 드리기도 했다. 연장을 들고 있다가 아버지의 작업이 길어지면 나의 머리는 딴생각으로 먼 여행을 떠나 제때에 공구를 챙기지 못하기도 해 아버지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나에게 많은 흥미를 주었다. 집 안에 있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고장 났을 때는 드라이버를 가지고 분해했다. 이것저것 연결 고리를 툭툭 건드려도 보고 이곳저곳 나사를 풀었다가 다시 조이면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나는 트랜지스터라디오 안에 있는 여러 부품과 회로가 신기해 온종일 그것들을 바라보며 놀았다.

초록이 마음껏 팔을 뻗은 산과 들을 달리며 내가 자란 옛집의 풍경을 떠올려 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 옛집의 어느 한 장면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훌륭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시골 생활을 하며 변한 것이 하나 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과 가족,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두었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뭔가 전후가 바뀐 느낌이 들기도 하나 ‘나’와 ‘나’ 사이가 좋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나 사이가 좋아지려면 내가 나에 대해 알아야 하고, 내가 나와 소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 의해 많은 지배를 받고 사는 것 같지만, 주변을 받아들이는 내 프리즘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러니 문제는 내 프리즘이고 나의 프리즘은 내가 자란 환경에서 차곡차곡 형성되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나 자신을 돌보고 알아가는데 정성 들이게 된다. 벗이 있는 구룡령에서 서늘한 계곡과 너른 꽃밭을 구경했다. 벗이 공구로 돌을 쪼아 작업하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공구에 관심이 갈 텐데. 이번에는 공구보다는 돌에 더 시선이 갔다.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사진은 구룡령의 모습. [중앙포토]

나이를 먹으며 나 자신을 돌보고 알아가는데 정성 들이게 된다. 벗이 있는 구룡령에서 서늘한 계곡과 너른 꽃밭을 구경했다. 벗이 공구로 돌을 쪼아 작업하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공구에 관심이 갈 텐데. 이번에는 공구보다는 돌에 더 시선이 갔다.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사진은 구룡령의 모습. [중앙포토]

나에 대한 또 하나의 단초를 발견했을 때 구룡령을 넘고 있었다. 구룡령 산방에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벗은 돌 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장 안에는 많은 공구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라면 나는 공구에 매달려 하나하나 용도를 물어보고 신기해하며 공구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나는 공구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벗이 사는 산방과 그가 만든 작품들에 눈길을 두기 시작했다.

벗이 아침에 일어나 바라보는 백두대간 앞산의 능선과 작업실까지의 동선, 강아지도 피해 다닌다는 하얀 데이지 꽃밭, 한여름 사정없는 땡볕을 피하기 좋은 작고 서늘한 계곡, 해 질 녘에 한 번씩 살펴봄 직한 야생화 꽃밭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활짝 피어 있는 산목련 한 송이를 따 들고 내실로 들어섰다. 산목련을 커다란 다기에 넣고, 끓인 물 열기가 한소끔 나가기를 기다려 산목련 차를 우려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간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저는 왜 돌을 좋아할까요? 제 머리가 돌이라서 그런 걸까요?” 백두대간을 품에 안고 있는 커다란 산방에 야생화 꽃 같은 작은 웃음이 번졌다. 돌은 많이 살아야 백 년 남짓을 사는 인간에 비해 더 오래 살았고, 더 긴 시간을 견딘 표징이었다. 비와 바람과 해와 달이 축적된 에너지를 안고 있었다. 고요하고 응축된 힘이었다. 나는 산목련 차를 한 모금 넘기면서 정으로 돌을 치는 울림을 상상했다. 백두대간 산속에 쩡하고 울려 퍼질 돌과 철의 부딪힘 소리.

강한 물성들의 부딪힘, 소리, 기억, 냄새, 촉감, 유년의 시간이 연상작용을 하며 피어올랐다. 구룡령 작업실을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아까부터 나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 계속 눈앞을 아른거렸다. 계단 옆 데크 위에 놓인 천연 돌조각은 살짝 형태를 입힌 달마의 선 같기도 하고, 마리아 어머니 같기도 했다. 그 표정이 정확히 읽히지는 않지만, 남성·여성을 초월해 온화한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결국 그 작품은 뽁뽁이에 싸이고 두툼한 박스에 한 번 더 싸여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돌을 쪼는 벗은 그 작품의 옆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 새가 똥을 떨어뜨렸으니 가져가서 좀 씻어주세요” 했다. 작품이 주는 아주 추상적인 느낌을 건네받으며, 작가가 부탁하는 매우 현실적인 주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산방을 떠나왔다.

사진·작품 박황재형, 체로금풍_다르마, 자연석, 225x85x275.

사진·작품 박황재형, 체로금풍_다르마, 자연석, 225x85x275.

오랜만의 외출이 피곤하였는지 나는 작품이 든 박스를 거실 한쪽에 모셔놓고는 그다음 주가 되어서야 작품을 풀었다. 그리고 벗의 말대로 수돗가로 데려가 가늘고 부드러운 천을 물에 적셔 작품에 묻은 새똥을 닦기 시작했다. 돌을 고르고 백두대간이 울리게 돌을 쪼고, 문지르고 갈고, 슬픔도 넣고, 기쁨도 넣고, 외로움도 넣고, 분노도 넣고, 새벽의 차 한잔 같은 맑음도 넣고. 문지르고 갈고 간 돌조각을 젖은 수건으로 닦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스친다.

얼마나 내려놓고 내려놓아야 이 달마같이 온화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얼마나 썩고, 남몰래 울어야 마리아 어머니처럼 순종할 수 있을까? 벗은 얼마나 많은 마음을 이 돌조각과 함께 내려놓았을까? 돌조각을 닦던 마음이 울컥했다. 선머슴처럼 떠돌던 마음이 이제 와 새삼 여성의 자리에서 움찔하였다.

냉장고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여성에게, 한 끼 밥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살림 선배에게, 내 몫의 슬픔은 이미 정기예금에 맡겨버린 예쁜 후배 여성들에게 느끼던 선망의 마음은 이런 여성성이었을까? 시골 생활을 하며 우주, 땅, 밭, 돌, 이들이 가진 여성성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아우르고 독려하고 참고 키우고. 이제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나’를 찾아보겠다고 나선 길에 오지랖이 더 넓어져 버렸다.

여성이지만 다시 여성성을 선망하는 마음. 어쩌면 나는 늘 내 가까이에 있었던 오빠나 아버지 같은 남성의 흉내를 배웠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속에 내 본성 여성이 다시 노크하고 있었다. 녹색의 에너지가 하늘을 향해 거칠 것 없이 마음껏 뻗고 대지는 살고 죽는 것들이 곪고 썩는 여름 한복판이다. 이 싱싱하고 푹푹 썩는 무더운 여름이 유난히 여성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제 와 새삼.

한순 시인·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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