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FTA 반대가 반미 폭력시위로 변질되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우려했던 대로 시위대들은 3m가량의 죽봉을 경찰에게 휘둘렀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경찰차량의 유리를 깼다. 보도블록을 깨 경찰에게 던지고 방화용 모래를 시위도구로 동원했다.

서울광장 등의 집회 신고 지역을 벗어나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이 교통소통 장애를 우려해 집회를 불허했던 광화문 네거리 등지에서 버젓이 불법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또 FTA를 반대한다며 시위를 시작해놓고 결국 "미국놈들 몰아내자" "양키 고 홈"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반미(反美)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시위대들은 지난달 초 미국 워싱턴에서 6일간 FTA 반대 원정 시위를 벌이면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사물놀이, 피켓.촛불시위, 3보1배 등의 평화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오히려 미국인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평화 시위, 한국에서는 불법 폭력 시위를 하는 이유가 뭔가. 조금이라도 법을 어기면 가차없이 단속하는 미국 경찰은 무섭고 우리 경찰은 허수아비로 보이는가.

불법 시위를 일삼는 시위대도 문제지만 폭력 시위에 소극적인 경찰의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경찰은 당초 시위대가 불법폭력시위를 벌이면 검거하거나 해산시키겠다고 해놓고 현장에서 불법과 폭력이 난무했는데도 한 명도 체포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도심에서 시위가 벌어진 데다 비가 왔기 때문에 현장에서 검거할 경우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었다"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경찰의 태도가 그리 물렁하니 공권력을 우습게 보고 폭력 시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경찰은 죽봉을 휘둘렀거나 유리창을 파손한 사람을 가려내 사법처리하고 폭력 시위를 주도한 범국본 집행부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범국본이 또다시 이런 집회를 신청하면 불허해야 한다. 법과 약속을 어긴 데 대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