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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작가의 작품도 한국문학관에 모두 수집할 것"

중앙일보

입력

염무웅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이 24일 문학관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아람 기자

염무웅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이 24일 문학관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아람 기자

"친일 작품도 그 내용을 정확히 알기 위해 모두 수집하고 보전할 계획입니다."

염무웅 국립한국문학관(이하 문학관) 초대 관장이 24일 문학관의 자료 수집 범위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서울 은평구에 들어설 문학관은 총 90억원의 예산이 책정, 내년 설계 공모를 거쳐 2023년 개관한다. 문학관은 최근 법인등기를 마치고 창립이사회를 열어 문학관 건립을 위한 채비를 마쳤다. 지난해 5월 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된 후 1년여 만에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염 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문학관은 한국 문학을 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라 수집ㆍ연구가 일차적 기능이므로 모든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해야 한다"며 "친일 여부를 떠나 모든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광수, 서정주 등 친일 혐의가 있는 작가는 물론 장혁주, 김문집 등 적극적 친일 작가의 작품도 수집하고 보존하겠다는 뜻이다.

나아가 그는 문학의 범주 설정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가령 19세기 말 미국, 일본 등으로 이주해 활동한 작가나 이들의 2·3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 문학으로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염 관장은 또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을 예로 들며 "이런 책은 재판, 삼판 등이 나오면서 수없이 많은 오류의 재생산이 있었는데 어느 판본까지 책을 수집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문학관은 전문 서지학자 등으로 구성된 자료수집 전문위원회를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염 관장은 "문학관은 무엇보다 망실 위기에 있는 작품과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향후 문학관에 연구기관을 설립해 문학관이 자료 저장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공간이 되길 꿈꾼다"고 전했다.

염 관장은 각국 문학관을 돌아본 소감도 밝히며 "중국현대문학관의 경우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적 요소가 과도하게 반영돼 문학의 보편적 가치를 해치는 측면이 있었다. 이와 달리 일본은 문인이 스스로 만든 문학관이 많아 작가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취미활동의 연장선 정도로 느껴졌다"며 "한국의 문학관은 역사성과 개별성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학관의 독립성과 관련해서는 "정부나 장관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어느 나라나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며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단합돼 문학관 독립성 유지를 위해 애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학관은 국립이긴 하지만 자율적ㆍ독립적인 기관이 되는 게 중요하다"며 "문학관 설립과 운영을 위해 국가의 재정 지원이 불가피하지만, 국가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작가와 문학전문가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문학관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염 관장은 또한 작품 소장도 정부의 재정지원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원로 문인과 유족, 시민의 적극적인 기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도쿄 근대문학관의 경우 소장품의 75~80%가 기증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도서수집가이자 서지학자인 하동호 전 공주대 교수가 5만5000점을 문학관에 기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기증 자료엔 『진달래꽃』 초판본도 들어있다. 염 관장은 "문학관은 자료를 전문적으로 영구 보존해주기 때문에 다른 소장처에 비해 훼손에 대한 우려가 적다. 적극적으로 문학관 기증을 장려하는 운동을 펼쳐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문학관은 서지학자인 하동호 교수가 기증한 5만5000점을 기반으로 초반 운영을 진행하면서, 내년까지 예산 25억원을 들여 주요 자료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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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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